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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여주시 무공수훈자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여주시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여주군 상리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공훈을 세워 국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이 고장 출신 무공수훈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무공수훈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무공수훈자회 여주군 지회는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8년 2월 21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에서 여주 군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였다.
여산 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익산 여산면 주민들에 의해 전개된 3·1독립운동 기념비. 일산 읍내에서는 1919년 3월 3월에 고총건(高寵權)이 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르 부르다 현장에서 체포된 적이 있다. 3월 9일 밤 9시에, 전북 익산 · 완주 등지의 여러 곳 산상에서 봉화가 올랐다. 그것을 신호로 3월 10일 익산군 여산면에서는 이정·박사국·이병석 등이 준비한 ‘조선자주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200여명의 면민들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여산면 헌병 분견소 남쪽 400m까지 진출하였으나 일본경찰은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을 체포하였다. 체포된 이들은 대구복심법원에서 6개월형을 언고받고 복역하였다. 2003년 5월 1일 여산면의 주민들은 여산지역 3·1독립운동에 참여한 3의사와 여산면 면민들의 나라사랑과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여산 헌병분견소 자리에 이 비를 세웠다.
여래사 순국선열봉안소 및 순국선열위령탑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58년
주제 : 기타
지역 : 서울특별시 성북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나라를 위해 순국한 373위 영령들의 위패를 모신 순국선열봉안소 및 위령탑. 1958년 2월 5일 대한불교조계종 여래사는 조국 독립을 위하여 민족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인 순국선열 373인의 위패를 봉안하는 봉안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순국선열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위령탑을 세웠다.
여주시 6·25 참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여주시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참전유공자회는 2003년 6월 25일 경기 여주군 여주읍 상리 132(영월공원 내)에 여주군 출신 6·25참전용사들의 전공을 기리고 호국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해 참전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기념비 뒷면에는 읍·면별 참전유공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여수항일독립운동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여수시 출신 애국지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연산초등학교 6·25참전유공자 명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이 명비는 6·25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연산초등학교 출신 6·25참전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후배들에게 애국정신을 일깨우고자 2018년 건립되었습니다.
연호 이의사 사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54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 강제 병탄에 항거하여 자진 순국한 이주환의 사적비.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나라가 망하면 국왕이 없는데 누구에게 세금을 바치느냐」며 세금 납부를 거부해 헝병대로 연행되었다. 이곳에서 강제 날인당하자 집으로 돌아와 자귀로 자기 엄지를 절단하였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승하 소식을 듣자 주상면 면사무소에 가서 자신의 호적을 찢어버리고 거창읍 침류정에서 절세시 1편을 남기고 자진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년 10월 22일 이주환의사 순절비 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이주환 의사의 애국충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웠다.
연천군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0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기도 연천군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연천의 의병운동은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일제의 침탈에 맞서 강고한 의병투쟁을 벌였고, 특히 1905년 ~ 1910년의 시기에는 연천 출신이거나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의병장 및 지도층과 많은 의병부대들이 연천·삭녕·마전(현재 연천지역)일대를 중심으로 끊임없는 항일투쟁을 전개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로 전락하기 직전인 1910년을 전후로 무자비한 탄압 및 대대적인 토벌에 나선 일제의 폭압에도 마지막까지 항일 의병운동의 깃발을 내리지 않았으며, 1919년 3월 21일 백학면 두일리 장날에 모인 군중들의 독립만세시위는 항일 의병운동의 전통을 발하던 연천의 항일 독립의지를 선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연천군 자유수호 무공 수훈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2007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연천군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연천군 은대리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공훈을 세워 국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은 이 고장 출신 무공수훈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자유수호 무공수훈탑’을 건립하였다. 무공수훈자회 연천군 지부는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7년 6월 18일 이 탑을 세웠다. 6·25전쟁에서 연천 군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였다.
연기우의병장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4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인천광역시 강화군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연기우(미상∼1914)는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인창리에서 성장하였다. 강화 진위대 부교로서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되자 지홍윤, 유명규, 이동휘, 김동수 등과 함께 전등사에 모여 의병모집을 밀의하고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창의대장 이인영의 휘하에 합류하여 대대장으로 서울 진격을 감행했으나, 양주에서 패한 후 창의 한북대장이 되어 다시 의병을 이끌고 연천·이천·안협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1월 21일에 강기동 의진과 합작으로 포천군 송우 등지에서 일본헌병대와 교전하여 2명을 사살했으며, 그해 12월에는 철원군 동면에서 일본 헌병 5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 뒤 황해도·경기도 일대에서 이진용·강기동 의진과 연합작전을 벌이면서 활동했다. 1909년 8월 이후에는 철원·연천 등지에서 20~40명의 소수 병력으로 게릴라전을 감행하며 활약했다. 1910년에는 구월산, 지리산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14년 마침내 일제에 체포되어 장렬히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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