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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3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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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애국지사 김용창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0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경기도 화성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용창은 1926년 향남읍 상두리에서 광산김씨 김언수와 순천박씨 박종레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향남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덕수상업학교 재학하면서 그러던 중 1943년 6월경부터 근무지의 대우가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차별이 있음에 의문을 품고 역사책을 탐독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그는 경성시내 곳곳에 “조선반도 2600만 동포여 일어서라. 조선독립의 때는 왔다”는 벽보를 써 붙이고 조선독립을 선동하다 체포돼 보안법위반으로 징역형으로 복역 중 고문 후유증으로 1945년 4월 3일 20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애양원 교회(신사참배거부 운동지)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41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애양원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여수노회 소속 교회로 애양원의 부속 전도실로 출발하였다. 1939년에는 일제에 항거한 순천노회의‘원탁회사건’으로 손양원 목사와 장로들이 체포되었다. 손양원 목사는 1902년 6월 3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손종일 장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칠원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1915년에는 일제의 궁성요배를 거부하여 퇴학당했으며, 서울 중동중학교에 재학 중 아버지가 3·1운동으로 투옥되자 다시 퇴학 처분을 받았다. 1917년 10월에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일본 동경유학 중에 기독교 교역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귀국하여 경상남도 성경학원에 입학하였다.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7월 여수 나병원의 애양원교회 전도사가 된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강요에 끝까지 맞서며 일제의 폭정과 우상숭배를 비판하였다. 그 때문에 그는 1940년 9월 경찰에 연행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해방을 맞아 출옥하였다. 그 후 그는 1948년 여순사건으로 두 아들을 잃었으며, 아들을 죽게한 청년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았다. 자신은 6·25전쟁 기간에 납북되는 도중에 북한군에게 희생되었다. 애양원교회는 1928년에 설립되었고, 1934년 화재로 인해 골조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전소되자 1935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애국지사 김영호 구국운동 추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북 전주(全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천도교(天道敎) 전주지구(全州地區)에 보내온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전주 시내에 살포하여 만세시위를 촉발시켰다. 그후 상경(上京)한 그는 동년 8월 서울에 거점을 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동 국민회(國民會)의 전주지부(全州支部)를 설치하고 재정부장(財政部長)으로 활동하였다. 이듬해 3월 독립운동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략으로 대한국민회로부터 3·1독립운동 1주년기념 경고문(警告文) 50매를 받아 전주 시내에 살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해 8월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탁송된 애국금통지서(愛國金通知書)를 받고 모금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일로 인하여 1922년 2월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년 8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애국지사 일성 이억근선생 공훈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의령군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남 의령(宜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14일 의령군 의령읍(宜寧邑)에서 구여순(具汝純)·최정학(崔正學)·정호권(鄭浩權)·최병규(崔秉圭)·이태수(李泰秀) 등을 중심으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장터에 모인 3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군중들 앞에서 구여순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의 취지를 연설하고 군중과 함께 태극길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일경의 무력탄압을 무릅쓰고, 읍내를 행진, 시위를 전개하다가 피체되었다. 같은 해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7월 14일 대구복심법원과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애국지사 김동호 사당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강원도 삼척시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애국지사 김동호는 강원 삼척 사람이다. 그는 1910년대 국내의 대표적 혁명단체였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으로 활약했다.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1915년에 7월 대구(大邱)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는 비밀·폭동·암살·명령을 행동강령으로 삼고 군자금을 조달하여 국내의 혁명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함으로써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에 관한 포고문을 발송했는데, 이때 그는 강원도 지역의 자산가들을 조사하여 포고문을 발송하는 등 강원도지역의 활동을 주관했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발각될 때 붙잡힌 그는 고초를 치르다가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고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동호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하여 광복단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척결 등에 앞장선 애국지사의 숭고한 독립운동 사상을 고양하고자 사당을 건립하였다.
애국지사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7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금산 출신의 애국지사 25인의 추모비. 금산 출신의 애국지사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국 항일의병에 참여한 이들과 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하자 이에 통분하여 자결한 이, 3·1독립운동이 지방으로 확산되어갈 때, 3일 23일 금산장터 3·1독립운동에도 많은 애국자사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한편 금산 출신자들은 일제 식민지 통치에 저항하여 청년운동과 학생운동 등 각 계층에서 전개된 사회운동에 가담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97년 9월 1일, 금산군에서는 독립유공자로 서훈 및 표창을 받은 금산 출신의 독립유공자들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애국지사 영광 정건수 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24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전라남도 보성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정건수는 보성에서 태어났다. 1943년 10월 중순경 일본군에게 강제 징집되어 1944년 9월 13일 중국 산서성으로 끌려간 그는 한구에 집결하던 중 중경의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박태만·이동섭·이병렬·이병남·이병렬·이순석·장회수·최용선 등과 함께 12월 30일 무기를 탈취하여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였다. 일행은 추격해온 일본군 10여 명을 사살하고 1945년 1월 25일 중경의 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하여 정부요원의 신변보호와 총사령부 경비를 담당하였다. 해방 후에도 중국에 남아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6년 6월 8일 귀국하였다. 생가터에 ‘애국지사 영광 정건수 위적비’가 2003년 11월 15일 설립되었다.
애국지사 청호 유인수 선생 의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6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라남도 곡성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유인수는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국권상실의 위기에 직면하자 1908년부터 의병진에 군자금을 조달하면서 항일투쟁을 지원하였다. 또한 1912년 이석용이 의병활동 재개를 위해 각 지역에 조직한 거점조직인 임자동밀맹단의 곡성지역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유인수선생 의적비는 그의 투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애국열사윤병구선생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7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충청남도 청양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윤병구는 청남면 중산리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북경에 본거지를 둔 의열단에 가입하고 1922년 총독 및 일제고관의 처단과 총독부, 동양척식회사, 경찰서등을 폭파하기 위한 계획과 자금조달을 유석현, 김지섭 등과 상의하였다. 그해 12월 23일 김지섭, 유석현 등과 함께 서울 무교동에 사는 총독부판사 백윤화 집에 가서 군자금 5만원을 요구하였다가 2천원의 자금을 약속받았다. 25일 밤 유석현과 같이 약속된 군자금 수령을 위해 백윤화의 집을 찾아갔으나 그의 신고로 잠복중인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시국표방강도 죄목으로 중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 그의 공훈을 기려 195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으며 청남면 중산리 태평이 마을에 기념비가 있다.
애국지사 송원 심재순선생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27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27년 11월 말경 전북 옥구의 이엽사 농장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나자 동년 12월 일본 동경에서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격문을 작성하고 300매 가량을 인쇄하여 국내의 신현국, 심상악, 심상호, 황봉규, 심호택에게 발송하고 1928년 1월 동경에서 김병우에게 신간회를 중심으로 역량을 모아 항일운동을 하도록 교시하고 그 방법을 제시한 문서를 송부하였으며 1930년 9월 옥구로 귀향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31년 8월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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