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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992
가평의병 3.1항일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895년 10월 명성황후시해 사건과 그 해말 단발령에 항거하여 가평에서는 북면을 근거지로 의병이 봉기하였다. 가평 지역의 의병들은 강원도 의병들과 연합하여 격렬히 전투하다가 이충응(李忠應, 1856~1896), 신재가(申在嘉, 1850~1895), 정문위(鄭文緯, 1851~1896) 등이 의병장으로 참여하여 순국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일어난 중기의병과 1907년 고종강제퇴위와 군대해산에 항거하여 일어난 후기의병에도 강귀손(姜貴孫, 미상 ~1909), 강윤희(姜允熙, 1868~1909), 김석하(金錫夏, 미상~1908), 김춘쇠(金春釗, 미상~1908), 나봉산(羅奉山, 1860~1910), 박내병(朴來秉, 미상~1908), 박내봉(朴來鳳, 미상~1908), 하상태(河相泰, 1868~1909), 홍난우(洪鸞祐, 미상~1908) 등이 참가하여 순국하였다.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15, 16일 이윤석(李胤錫, 1894~ 1953)·정흥교(鄭興敎, 1900~1965) 등의 주도로 군북면사무소 앞에서 수백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가 시작되어 가평읍 군청앞으로 행진하여 이를 진압하려는 군경과 대치하였다. 이 시위로 체포된 사람이 70여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28명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르거나 태형에 처해졌다. 남양주시에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서 1994년 3월 15일 이 비를 세웠다.
가래비 3.1운동 순국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기념비는 가래비 3·1독립운동 순국선열 백남식, 이용화, 김진성과 양주 출신 참여자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2007년 10월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732-4에 건립한 비이다. 1919년 3월 초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백남식(2010, 애국장)은 김진성, 이용화와 함께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3월 28일 백남식 등은 효촌리 주민들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고창하면서 가납리로 향하였다. 이들이 가납리에 도착했을 때, 미리 모여서 만세를 부르던 광적면과 백석면 주민들은 시위를 마치고 해산하려다가 다시 모였다. 시위대는 오후 4시경 논 가운데 모여 시위를 재개하였다. 이때 의정부에서 급파된 일본 헌병 5명과 헌병보조원, 광적면장이 도착하였다. 헌병이 군중의 해산을 명령하자, 이용화가 이들을 크게 꾸짖었고 군중들이 이들을 향해 돌팔매를 시작하자, 일본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다. 이때 시위대 선두에 있던 백남식, 김진성, 이용화 3인은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시위대원 가운데 4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가람문학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892~1968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라북도 익산(益山) 사람이다. 1927년 2월 권덕규(權悳奎)·최현배(崔鉉培)·정열모(鄭烈模)·신명균(申明均) 등과 같이 "한글사(社)"를 조직하고 월간 잡지 "한글"을 발간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전념하였다. 1929년에는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가 조직한 조선어사전편찬회(朝鮮語辭典編纂會)의 발기인이 되어 사전편찬의 일을 추진하였다. 또한 1920년대 전반에 걸쳐서 민족(국민)문학의 부흥을 주장하고, 고유한 민족문학의 한 장르인 시조(時調)의 발전을 위하여 진력하였다. 1930년에는 조선어연구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31년에는 동아일보사의 지원으로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 조선어연구회를 1931년 1월 확대 개편)의 전국 순회 조선어강습회에 강사로 참가하여 1천 6백명의 지도층 청년들에게 한글 강습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34년 5월에는 민족문화와 국사·국어국문 등 국학연구단체로서 진단학회(震檀學會) 창립의 발기인이 되어 국학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36년 1월에는 조선어학회가 조직한 조선어 표준어사정위원회(朝鮮語標準査定委員會)의 위원으로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1942년 10월에 일제가 한국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사건(朝鮮語學會事件)으로 구속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으며, 1943년 9월 1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로 석방되었으나, 실질적으로 1년간의 옥고를 겪었다. 1945년 8·15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문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익산시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문학관을 설립하였다.
강진읍교회 종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남도 강진군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강진읍교회 종탑은 1919년 4월 4일 강진독립만세운동을 있게 한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당시 시계가 거의 없던 상황에서 강진읍교회 종소리에 맞추어 비둘기바위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진행함 1914년 1월에 건립되어 1964년 교회의 이전에 따라 함께 옮겨와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음 현재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65호로 지정 및 관리되고 있고 담임목사를 포함한 6명의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음 매년 4.4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 때마다 종탑을 지나가고 있으며 행진 중에 33번의 타종을 실시하여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음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인천광역시 강화군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기념비는 강화 3·1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4년 11월 26일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05 (용흥궁공원 내)에 건립되었다. 강화의 3·1운동은 3월 13일 강화읍 장날을 기하여 전개되었는데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 학생 80여 명이 만세시위를 하다가 주동자 5명이 체포되었다. 이어 3월 18일 강화읍 장날에 길상면 온수리에 거주하는 유봉진(1990, 애족장)의 주도하에 2만 여명의 군중이 장터에 몰래 집결하였다가 12시를 알리는 강화 동종의 개시 신호로 일시에 뛰어나와 민족주권을 되찾고자 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후 5월 1일까지 2달 동안 각 면 단위에서 횃불 시위 등으로 진행된 강화 3·1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60여 명, 체포 및 재판 회부가 50여 명에 이르며 3·1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된 사람이 18명에 이른다.
강릉항일기념공원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강원도 강릉시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2010년 5월 11일 강릉시는 강릉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항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강릉항일기념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는 높이 10m의 지방의병항쟁기념탑과 강릉 지역에서 의병 활동한 민용호(을미의병 관동구군도창의대장, 독립장), 민긍호(정미의병 관동창의대장, 대통령장), 권인규(정미의병, 독립장), 권종해(정미의병, 애국장), 권기수(3·1운동, 애족장) 등 5명의 흉상이 건립됐다. 그 후, 의병활동을 펼친 공훈을 인정받아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받은 권익현 지사 흉상을 2014년 7월에 추가(14년도 국가보훈부 12백만원지원)로 건립하여 현재는 총 6명의 항일 애국지사의 흉상이 안치되어있다. 또한 의병장들의 어록, 항일의병 참여자 120명의 명단, 의병 항쟁사 등이 새겨진 조형물이 설치됐다.
강원도 항일애국선열 추모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95년
주제 : 기타
지역 : 강원도 춘천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강원도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독립군전투, 대한민국임시정부, 학생운동, 광복군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강원도에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 8월 15일 이 탑을 세웠다.
강진 3.1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남도 강진군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4월 4일 강진읍 장날 이기성·오승남·황호경(黃鎬京) 등의 사전 준비로 1천여명이 장터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강주형(姜宙馨, 1887~1976), 김후식(金厚植, 1896~1959), 오승남(吳承南, 1899~1982), 오응추(吳應秋, 1898~1969), 이기성(李基性, 1894~1944) 등이 피체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강진3·1운동기념비건립위원회와 동아일보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1976년 5월 9일 이 비를 세웠다.
강문호목사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할지청 :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
시설내용 : 강문호는 제주도 남제주 사람으로 기독교인이다. 1919년 3월 31일 군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은 3월 5일의 군산 만세시위 때 체포된 30여명의 영명학교 교사·학생들이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재판을 받는 날로¸ 영명학교 4학년인 그는 이날 그들의 재판과정을 보기 위하여 방청석에 앉아있었다. 30여명의 만세운동 주동자들이 간수에게 끌려 재판장으로 들어오는 찰나¸ 그는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과 학우들이 묶여 들어오는 광경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모자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많은 방청객들이 이에 호응하여 재판정은 별안간 만세 현장으로 변하였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이해 고등법원에서 소위 법정 소란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교회 목사로서 민족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항상 일본 경찰 헌병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수시로 가택수색을 당하였고¸ 일제의 창씨개명을 끝까지 반대하는 등 계속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제주의 한림교회에서는 강문호목사의 독립운동을 기리고자 1991년 강문호목사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강경 항일독립만세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이 기념비는 강경에서의 1, 2차 독립운동의 시발점인 옥녀봉 산정에 강경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5년 10월 건립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강경읍의 장날 하오 3시경 엄창섭, 고상준, 추병갑 등이 주동하여 500여 명의 군중들이 옥녀봉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 행진하였다. 일본인이 거주하는 본 정통을 지나 시장을 일주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왜경은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주동인물은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3월 20일 오후 5시경에도 옥녀봉에서 이근석, 이봉세 등이 1, 000여 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강경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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