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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거제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남 거제시 신현읍에 민족사의 비극인 6·25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거제시에서 1999년 10월 15일 이 유적공원을 건립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그해 11월 27일 유엔군에 의해 거제시 옛 신현읍, 연초면, 남부군 일대에 수용소가 설치되었고, 1951년 2월부터 포로수용소 업무가 시작되었다. 1951년 6월까지 북한 인민군 포로 15만과 중공군 포로 2만명 등 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고, 그 중에는 여성 포로도 300명이 있었다. 그후 휴전회담시 포로송환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와 송환을 원하는 친공포로 간에 유혈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1953년 2월에 부상당한 포로를 우선 교환하자는 유엔 측의 제안에 북한이 수용을 함으로써 북한, 중공, 유엔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때 교환된 포로의 숫자는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684명, 북한과 중공군을 포함한 북한 측이 6, 670명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으로 인해 더 이상의 효용가치가 없어져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현재는 잔존건물 일부만 남아서 이곳에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이나 모습, 의복, 무기 등을 전시해 놓고 있으며, 최근 기존의 시설을 확장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여 전쟁의 역사와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은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고, 야외 캠프와 일부 유적터만 남아 있던 포로수용소 유적지를 확장하여 1999년 유적관을 1차로 개관하였고, 2002년 11월 30일 유적공원을 준공하여 2차로 개관하였으며, 2005년 5월 27일에는 흥남철수작전 기념 조형물을 준공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거창군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거창군재향군인회는 1967년 3월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31에 지리산 공비토벌 및 6·25전쟁에서 전사한 거창군 출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거창군의 지원을 지원받아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이후 탑이 노후화되자 거창군은 2010년 기존의 충혼탑을 헐고 그 자리에 충혼탑을 재건립했다. 이 일대에 죽전근린공원을 조성, 충혼탑을 중심으로 거창군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 참전기념비 등도 나란히 세워 호국공원의 면모를 갖추었다.
거제시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거제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거제시는 1983년 6월 거제시 고현동 산 59-7번지에 6·25전쟁 당시 산화한 거제시 출신 1, 000위의 호국영령을 봉안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위훈을 후세에 전승하기 위하여 이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거제 3.1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거제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4월 3일 이운면 아주리에 살던 윤택근(尹澤根)·이인수(李麟洙)·이주근(李柱勤) 등이 주도하여 아양리 장터에서 50여명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가 일어났다. 같은 날 옥포리 시장에서도 주종찬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로 이주근(李柱勤, 1898~1966), 이인수(李麟洙, 1900~1962), 주종찬(朱宗贊, 1893~1933) 등이 주동자로 피체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거제시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2001년 6월 1일 이 탑을 세웠다.
거룩한 얼의 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남도 나주시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나주 남산공원 내에 1969년 6·25전쟁 기간에 전사한 860명의 나주 출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거룩한 얼의 탑’을 건립하였다. 나주군은 충혼탑건립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탑의 건립을 추진하였고, 1969년 6월 6일 현충일에 준공하여 나주 출신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였다. 6·25전쟁 기간 나주 군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 제6사단의 침략에 맨주먹으로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나주시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거제시 월남참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65년
주제 : 월남참전
지역 : 경상남도 거제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월남참전전우회 거제시지회는 2008년 4월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산59-9에 세계의 자유수호를 위하여 베트남 전선에 참전하여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한 거제시 출신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자유수호 정신을 기리고 나라 사랑과 국가 안보 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하고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건국청년운동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45년 광복이후 전국에서 청년과 학생들이 궐기하여 공산당과 항쟁하여 대한민국 건국의 터전을 닦고, 6.25남침때는 총을 메고 싸워 자유수호 호국의 초석을 다진 것을 기념하고자 이 비를 세움
건국훈장포상자 문초처사 함종어공 휘명철 유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65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91년 5월 5일 함종어씨 문초공파 종중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어명철 선생의 항일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이다. 어명철 선생(1865~1923)은 거창군 가조면 출신이다. 1919년 3월 21일 가조면 석강리에서 동지들과 비밀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여 다음날인 22일 거창읍 장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오문현 신병희 어명우 등과 함께 마을 대표로 뽑혀 연락책을 맡았다. 그러나 정보가 누설되어 일제 헌병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던 중 거사 당일인 3월 22일 거창읍 가조·가북면의 3천명의 시위대에게 구출되어 군중과 합세, 거창읍으로 행진하여 그 선봉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헌병에 체포되었다. 이해 7월 31일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건재 정인승선생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897년
주제 : 문화운동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정인승(鄭寅承, 1897~1986)은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출생으로, 호는 건재이다. 1925년 3월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미국행을 희망하였으나 집안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25년 4월부터 1935년 8월까지 전라북도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35년 서울로 와서 최현배(崔鉉培)를 만나 조선어학회 이사가 되면서 1936년 9월부터 1957년 10월까지 『큰사전』(전 6권) 편찬을 주재하여 완간하였다. 사전 편찬 중이던 1942년 10월 1일 일제가 한국어의 보급과 한글로 된 출판물의 출간을 금지하는 한국어 말살정책을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되어 함흥경찰서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945년 1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그의 뜻을 이어받아 이를 널리 알리고 우리의 겨레와 사회에 우리 민족정신과 우리 언어의 뿌리를 배양하고자 국가보훈처, 장수군청, 장수군지역 주민들과 유족들이 힘을 합쳐 2005년 10월 24일 기념관을 선생의 고향인 전북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에 건립하였다. 정인승 기념관에는 선생의 유품과 저서, 약력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며, 외부에는 선생의 동상과 유허비, 사당을 건립하여 선생의 한글 사랑 얼을 기리고 있다.
검정다리 추억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6년
주제 : 기타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일제강점기에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대신동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수 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면회를 오기도 했다. 이 때 건넜던 검정다리는 다리를 놓은 통나무를 썩지않게 하기 위해 검게 그을린 데서 이름 붙여졌지만, 애국지사들이 검은 수의를 입고 옥살이를 한 데서 왔다고 한다. 1987년 이후 이 다리는 복개공사로 없어졌지만, 부산 중구청은 이 다리에 얽힌 애환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서 1996년 7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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