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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고당 조만식선생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83년
주제 : 사회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76년 12월 7일 서울 광진구 능동 18(어린이대공원 내)에 조만식 선생의 숭고한 항일정신과 자유수호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동상이다. 조만식 선생(1883~1950)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구한말에서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의 한 분이다. 1913년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 교사에 취임하고 이후 교장에 올랐다. 1919년 3·1운동 때 평양에서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지휘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오산학교 교장, 평양기독교청년회 총무, 조선물산장려회 주도,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중앙집행위원, 신간회 평양지회장 등 다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는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의 위원장과 인민정치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11월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반공노선에 입각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소련군에 의해 연금당한 후 행방불명되었다. 1970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고하 송진우선생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89년
주제 : 사회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송진우(宋鎭禹, 1890년 5월 8일 - 1945년 12월 30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며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언론인, 교육자, 사상가,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한국민주당의 초대 당수였으며,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해방 후 정치인으로서 한국민주당의 초대 당수였으며,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언론인, 교육자, 사상가로 활동하였다. 1921년 동아일보사의 제3대 사장에 취임하였고, 1922년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23년에는『동아일보』를 통하여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적극 선전하였다. 1924년 4월 친일파 박춘금(朴春琴)의 권총협박사건으로 동아일보사 사장을 사임하였으나, 1925년 4월 동아일보사 주필로 활동하였다. 1926년 3월 국제농민회 본부로부터 조선농민에게 전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게재했다가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10월 동아일보사 제6대 사장에 취임했으나, 1936년 8월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한 소위 '일장기 말소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을 조직하여 수석총무로서 활동하다가 1945년 12월 30일 암살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평생 항일독립과 민주건국을 위하여 몸바친 선생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하여 송진우선생동상건립위원회에서 1983년 9월23일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고당 조만식선생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83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경기도 파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92년 10월 20일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659(오두산통일전망대)에 조만식 선생의 숭고한 항일정신과 자유수호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동상이다. 조만식 선생(1883~1950)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구한말에서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의 한 분이다. 1913년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 교사에 취임하고 이후 교장에 올랐다. 1919년 3·1운동 때 평양에서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지휘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오산학교 교장, 평양기독교청년회 총무, 조선물산장려회 주도,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중앙집행위원, 신간회 평양지회장 등 다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는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의 위원장과 인민정치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11월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반공노선에 입각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소련군에 의해 연금당한 후 행방불명되었다. 1970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고 민족영웅 의병대장 민긍호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08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강원도 원주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말 의병장 민긍호는 1865년(고종 2년) 서울에서 민치봉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여흥이다. 인품이 곧고 강했으며 공과 사가 분명하여 부하들에게 존경을 많이 받았다. 1907년 원주 진위대의 특무정교(현재의 특등상사)로 있을 때, 고종이 일제의 압력을 받아 물러나고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라는 명령이 내려지자 이에 분노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원주의 장날인 1907년 8월 5일 병사들을 이끌고 원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서 항일 무장 투쟁을 펼쳤다. 그는 일본 경찰 분견소 등을 공격해 원주 지역을 차지한 뒤, 충청도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과 힘을 합쳐, 충주에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경기도 양주에서 이인영이 일제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전국 의병 연합 부대로 13도 창의군이 새로 생기자 관동 창의군 대장으로 뽑혔다. 그는 강원·충청·경기도 일대의 의병 부대와 연합해 일본군과의 100여 차례 싸움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1908년 2월 29일 원주 치악산 강림촌에서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용감히 싸우다가 붙잡혀 4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그는 일본에게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한 근대 민족 운동의 횃불이 되었다. 나라를 세우는 데 이바지한 공로로 1962년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봉산동 민긍호 의병장 묘역 충혼탑은 1954년 원주 제2경비사령부로 부임한 독립운동가 출신 권준(1895~1959) 장군이 민긍호 의병장을 추모하기 위해 이 곳으로 묘를 이장하면서 건립했다.
고 김승철중위 전사지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과천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에 김승철 중위의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한림 장군이 1956년 9월 19일 이 비를 세웠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이한림 장군의 부관이었던 김승철 중위는 1950년 7월 2일 장군을 수행해 작전임무를 수행하던 중 과천시 갈현동 산 13번지를 통과하다가 잠복해 있던 북한군과 맞딱드리게 되고 북한군의 저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1959년 9월 19일 김승철 중위를 기리기 위해 과천시 갈현동에 이한림 장군이 충혼비를 건립하였다. 이후 이 충혼비는 국방부에서 관리해오다 과천시가 관리하게 되었다. 도시계획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고인의 순국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과천시 갈현동 찬우물버스정류장 뒷편으로 이설 새로이 단장했다.
고성지역 전투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고성군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고성군 통일전망대 내에 2003년 6·25전쟁 시기 고성지역 전투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산화한 이익화, 이종직, 고태규, 황희성, 김기생, 노무자 등과 제22보병 사단 창설 이후 순직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탑을 건립하였다. 육군제5861부대와 고성군은 충혼탑건립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탑의 건립을 추진하였고, 2003년 5월 1일에 준공하여 이 지역에서 희생된 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였다. 6·25전쟁 기간 고성 출신의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고성군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고 육군중위 차성도 흉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70년
주제 : 기타
지역 : 울산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울산보훈지청
시설내용 : 울산시 중구 서동 병영초등학교에 이 학교 출신으로 훈련중 잘못던진 수류탄을 온 몸으로 덮어 순직한 차성도 중위를 기리기 위해 병영학교 총동창회에서 2009년 이 흉상을 세웠다. 차성도 중위는 1969년 육군 3사관학교 1기생으로 입교, 이듬해인 1970년 강원도 화천 육군 제27사단에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같은 해 5월13일 소대 야간방어훈련에서 한 소대원이 수류탄을 투척하려 안전핀을 뽑다 실수로 손잡이를 놓치자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병사들을 구하고 자신은 복부가 파열돼 순직했다. 자신의 생명을 던져 부하의 목숨을 구한 희생정신을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게 하고자 이 흉상을 모교 교정에 세웠다.
고근홍대령 전승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다부동 전투 등에서 공을 세고 전사한 고근홍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전송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 1979년 1월 1일 이 비를 건립하였다. 고근홍 대령은 1920년 경기도 강화군 하점면 망원리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제1기로 졸업한 후 일선 지휘관으로 근무했다. 6·25전쟁 발발 후 보병 제8사단 제10연대장으로 대구 부근 다부동 및 영천전투에서 연전연승, 불멸의 공을 세우고 적군을 추격, 한탄강을 지나 평양을 점령하였고, 1950년 11월 25일 평남 덕천 부근에서 중공군과 격전 끝에 장렬한 전사를 하여 31세를 일기로 조국수호에 몸을 바쳤다.
고양 6.25 참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고양6·25참전동지회는 2001년 6월 25일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산97-6에 6·25전쟁에 참전한 고양시 거주 회원들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참전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고흥군 현충공원
시설 : 공원
사건 연도 : 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남도 고흥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구 현충탑 등 시설물이 오래되어 낙후되고 장소가 협소하여 추모객들의 방문에 어려움이 있어, 호국시설 등을 새롭게 건립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고 나라사랑정신의 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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