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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섭중령 상

  • 시설명

    최범섭중령 상

  • 주제

    국가수호

  • 종류

    동상

  • 주제분류

  • 소재지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 사서함 75-15 육군보병학교

  • 관할지청

    광주지방보훈청

  • 관리자

    육군보병학교

  • 사건연도

    1968년

  • 시설규모

  • 시설건립일

    2010-10-21

관련 사진

시설 내용
전남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 상무대 내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산화한 최범섭 중령을 추모하기 위해 육군보병학교에서 2010년 10월 21일 동상을 건립했다. 최범섭 소령은 1966년 6월, 베트남에 파병된 태권도 교관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1964년 9월, 의료지원단을 베트남에 파병하면서부터 10명의 태권도 교관을 파병해 남베트남의 군사교육기관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태권도가 한국군을 알리고 위용을 과시하는 첨병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그 시기에 파병됐던 최범섭 소령은 메콩강 남쪽 '껀토'에 위치한 남베트남군 제4군단의 태권도 교육을 담당하는 제4지구대장이었다. 당시 껀토 일대에 주둔한 한국군은 태권도 교관단뿐이었다. 따라서 최소령은 그 지역에서 일하고 있던 40여명의 한국 민간인 기술자에 대한 후견인 역할까지 담당해야 했다. 껀토는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의 아비규환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특히 1968년 1월 31일에 시작된 베트콩의 음력 1월 1일 '뗏(Tet)공세'는 치열했다. 남베트남군의 많은 병력이 고향을 향해 휴가를 떠났으며, 우방국 병력들도 느긋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1월 31일 새벽, 남베트남 전역에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었다. 최범섭 소령이 근무하고 있던 껀토에서도 베트콩의 기습공격은 예외가 없었다. 그때 제4군단사령부에서 상황을 파악하던 최범섭 소령은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한국인 기술자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그는 다음날인 2월 1일 아침10시경, 보좌하사관 윤청길 중사를 대동하고, 껀토 시내로 나가 민간인 기술자들을 소집했다. 12시까지 20여 명의 기술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최범섭 소령은 그들을 남베트남군 제4군단 내 자신의 숙소로 긴급 대피시켰다. 이어 남베트남 군 관계자에게 장갑차 1대와 칼빈 소총 20정을 대여받아 민간인 기술자들을 무장시켜 자체 경비에 임하면서 사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내에 침투한 베트콩들의 도발은 점점 더 격화되면서 상황이 악화되기만 했다. 최범섭 소령은 나머지 20여 명의 동포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그는 나머지 20여 명의 기술자를 구출하기 위해 2월 6일 윤청길 중사를 대동하고, 시내로 달려갔다. 최범섭 소령이 보좌관 윤중사와 함께 시내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민간인 기술자들을 소집하고 있을 때인 10시 20경이었다. 최 소령 일행은 갑자기 조우한 베트콩 5명과 총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들과 교전에서 윤청길 중사가 초전에 전사했다. 최 소령은 다리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5발이 장전된 권총으로 응사하며, 교전을 계속한 결과 베트콩 2명을 사살했지만 결국 그도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최범섭 소령의 불타는 사명의식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최고훈장인 태극무공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