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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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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3·1독립운동 기념비

  • 시설명

    군산 3·1독립운동 기념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3·1운동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구암동 358-6

  • 관할지청

    전북서부보훈지청

  • 관리자

    구암교회

  • 사건연도

    1919년

  • 시설규모

    2.5M X 1.5M X 2M

  • 시설건립일

    2000-03-05

관련 사진

안내판 사진

시설 내용
군산은 호남지방에서 처음으로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시위는 주로 구암교회 신자와 영명학교, 멜본딘 여학교, 구암 예수병원 등 학생 및 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처음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 김병수가 주도하였는데, 여기에 이두열, 고석주, 김수영 등의 영명학교 교사들과 양기준, 유한종 등의 예수병원 직원들이 합세하여 군산의 장날인 3월 6일에 거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3월 5일, 거사의 낌새를 눈치 챈 일본경찰 10여명이 영명학교와 멜본딘 여학교를 급습하여 박연세와 이두열이 잡혀가자 계획한 다음날을 기다리지 않고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예수병원직원과 영명학교 교사 20여명, 학생 100여명, 멜본딘 여학생과 주민들 140여명 가량이 영명학교 운동장에 모여 출발하여 군산경찰서 방면을 향해 다가가며 독립선언서를 곳곳에 뿌리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어느새 군산은 ‘독립만세운동’의 물길에 휩싸이게 된다. 그 후 점차 수가 늘어나자 일본 경찰은 군중들에게 무자비한 사격을 가하였다. 이때 만세운동 현장에서 검거되거나 체포된 사람은 약 90여명으로 모두 군산경찰서에 투옥되었고, 영명학교와 멜본딘 여학교는 헌병대와 일본경찰들이 수색하여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서를 압수하고 학교의 기물을 파손하였다. 심지어 두 학교의 교사들은 만세운동과 관련이 있든 없든 모두 연행되어 며칠씩 심문을 받는 고충을 당하기도 하였다. 군산에서 3월 5일에 일어난 3·5만세운동은 호남지방 최초로 일어난 봉기로 이후 전북 전 지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군산의 자긍심을 세우고, 선열들이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발전 및 후세까지 역사현장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군산 3.1운동기념사업회에서 군산 3.5만세운동의 발원지인 구암동산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