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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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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지사 생가

  • 시설명

    남자현지사 생가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생가

  • 주제분류

    의병운동

  • 소재지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393-5

  • 관할지청

    경북북부보훈지청

  • 관리자

    영양군(주민생활지원과)

  • 사건연도

    1919년

  • 시설규모

  • 시설건립일

    1999-11-30

관련 사진

시설 내용
남자현지사 생가는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양군과 남자현의 후손들이 3년여의 조성 기간을 거쳐 1999년 11월 30일에 복원한 생가이다. 본채·추모각 등의 건물과 주차장, 남자현지사 항일순국비를 갖추었다.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지나면 본채와 부속채가 있고, 본채 뒤편에는 추모각이 있다. 남자현의 본관은 영양이고 아버지는 통정대부 정한(廷漢)이다. 1896년 남편이 의병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싸우다 죽자, 유복자를 기르면서 시부모를 모셨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 이후에는 의병으로 활동한 아버지 정한을 도와 장정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부상을 입은 투사들을 간호하는 한편 독립군의 간부를 추천했다. 1921년 지린성에서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에 주력했다.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의 리튼 경이 하얼빈에 왔을 때, 무명지를 끊어 흰 수건에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 혈서를 써서 끊어진 손가락과 동봉하여 리튼에게 보내 독립을 호소했다. 1933년 이규동(李奎東) 등과 함께 만주국 주재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의 살해를 기도하다가 2월 28일 체포되었다. 옥중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강인한 의지로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병보석으로 출옥했으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8월 22일 하얼빈의 여관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