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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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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형 애국지사 기념비

  • 시설명

    강원형 애국지사 기념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한말구국운동

  • 소재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1리 288-6

  • 관할지청

    대구지방보훈청

  • 관리자

    강신욱

  • 사건연도

    1862년

  • 시설규모

  • 시설건립일

    1965-10-03

관련 사진

시설 내용
강원형은 구한말 국권회복운동과 을사조약 반대 투쟁을 전개한 독립지사이다. 강원형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동리에서 태어났다. 1895년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만행이 자행되자 이를 규탄하는 구국상소를 올렸다. 1904년 2월 일본이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일본군을 한국에 상륙시켜 「제 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해서 내정을 간섭하며 침략정책을 강화했다. 그러자 1905년 1월 대한십삼도유약소(大韓十三道儒約所)를 설치하고 그 수좌가 되어 일본공사관에 항의공함을 보내어 일본의 침략정책과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반성을 촉구했으며, 일본이 계속 내정간섭을 자행할 때에는 결사적으로 이에 맞서 싸울 결의를 전달하였다. 1905년 3월 일본 헌병대가 전참판 최익현, 전판서 김학진, 비서승 허위 등 3인을 일제 침략정책을 규탄하는 격문을 돌렸다 하여 구속하자, 강원형은 일본군 사령부에 항의공함을 보내어 일본의 불법을 힐문하고 3인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또한 대한13도유약소의 대표로서 각국 공사관에 공함을 보내어 일본의 교활한 침략정책을 규탄하고 3인의 구속에 대한 공개담판을 요구하였다. 강원형 등의 이러한 운동으로 3인은 석방되었으나 강원형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45일간 구속되었다. 1905년 5월에 석방된 후에도 일본의 배신과 침략정책을 규탄하는 항의공함을 일본 공사관에 여러 차례 발송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곧 13도 유생 연명소(聯名疏)에 우두머리가 되어 상소를 올리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5적의 처단을 요구하고, 일본 공사의 횡포무례를 엄징할 것을 요구했으며, 같은 뜻을 시민들과 세계에 성명하여 시민들의 국권회복에의 궐기를 호소하였다. 이로 인하여 1905년 11월 28일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개월간 투옥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