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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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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유공비

  • 시설명

    3·1운동 유공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3·1운동

  • 소재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산 2-13

  • 관할지청

    부산지방보훈청

  • 관리자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 사건연도

    1919년

  • 시설규모

    0

  • 시설건립일

    1997-03-01

관련 사진

안내판 사진

시설 내용
이 유공비는 범어사 학생의거 3·1운동 유공자 42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7년 3월 1일 부산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앞 문화의 거리에 건립한 비이다. 범어사 지방학림(고등보통과정)을 졸업한 김법린은 한용운의 지시에 따라 3월 4일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범어사 청련암에 도착하였다. 3월 17일 저녁에 개최된 명정학교, 지방학림 두 학교 졸업생을 위한 송별연 모임에서 3월 18일 동래읍 장날을 기하여 의거를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앞서 독립선언서와 격문 「한번 죽는 것은 자유를 얻는 것만 같지 못하다」1천 장이 준비되었고, 태극기도 주동인물 등에 의해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3월 17일 저녁 졸업생 송별연 모임은 김영규의 축사를 끝으로 모두 ‘대한독립만세’ 3창을 외쳤고, 청련암으로 자리를 옮겨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동래읍에 잠입하기로 하였다. 불교포교당에 18일 새벽 1시쯤에 도착하였으나, 한 학생의 밀고로 일본 헌병과 경찰이 들이닥쳐, 김영규, 김상기, 김학기 등을 경찰서로 연행하고 나머지 인원은 강제로 해산시켰다. 다음날 19일 아침에는 준비해놓은 격문과 독립선언서를 동래시장을 비롯한 동래읍 일원에 뿌리며 다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수십 명의 명정학교, 지방학림 학생들과 민중들이 합세하여 동래시장 남문부근에 다시 집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돌진하다가 강제 해산되고 주동인물은 대부분 검거되었다. 이 의거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34명에 달하며 대부분 부산 또는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