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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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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 사적비

  • 시설명

    3·1독립운동 사적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3·1운동

  •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73번지

  • 관할지청

    울산보훈지청

  • 관리자

    울주청년회의소

  • 사건연도

    1919년

  • 시설규모

  • 시설건립일

    1992-10-03

관련 사진

시설 내용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4월 2일 언양 장날 이무종·이규인·이성영·강경찬·최해선·이규경 등이 주동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장터의 군중 1, 000여명이 독립만세 시위를 하여, 출동한 일본군 수비병에게 1명이 총에 맞아 순국하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시위와 관련하여, 강기형(姜祺馨, 1876~1940), 강기형(姜祺馨, 1876~1940), 강문필(姜文必, 1872~1953), 김경수(金卿洙, 1892~1968), 김운봉(金雲峰, 1893~1950), 김정욱(金正勖, 1883~1947), 김정원(金正元, 1880~1961), 김한준(金漢俊, 1884~1956), 서태식(徐泰植, 1889~1973), 손수복(孫秀福, 1877~1961), 윤봉수(尹鳳秀, 1889~1971), 이규인(李圭寅, 1890~1927), 이무종(李武鐘, 1893~1956), 이성영(李成榮, 1879~1940), 정태원(鄭泰源, 1869~1953), 최윤봉(崔允奉, 1898~1934), 최한홍(崔翰鴻, 1898~1949), 최한홍(崔翰鴻, 1898~1949), 허황(許황, 1874~미상) 등이 피체되어 태형, 옥고 등 고초를 당하고, 김낙수(金洛綬, 1880~1919)는 옥중 순국하였다. 언양 지역 3·1독립운동의거기념비 추진위원회는 1992년 10월 3일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