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호는 1909년 백산 안희제·남형우·서상일·김동삼·박중화 등 80여 명의 동지들이 참가한 비밀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직후에는 부산에서 백산 안희제가 설립한 백산상회에 지배인 겸 중역으로서 참여하였다. 이 당시 백산상회는 단순한 무역회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주요 공급처였다. 1919년 11월 안희제와 함께 기미육영회를 조직하여 애국청년들을 양성하기 위해 다수의 유학생을 외국에 파견하였다. 1929년 10월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할 때 여기에 참가하여 국어사전 편찬사업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속되어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고 1943년 9월 18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이 같은 윤병호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