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중순 경남 사천 지역에서는 1919년 3월 13일 김진곤이 주도한 곤양장터 독립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3월 21일 사천보통학교 졸업식장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져 이날 오후에는 3백여 군중이 사천읍내에서 만세를 부르고 진주읍으로 시위행진을 하던 도중 일제에 의해 차단되었다. 3월 25일 삼천포 장날에도 1천여명이 3개 대열로 나누어 다음날까지 만세시위를 하였다. 4월 5일에는 곤명면에서, 4월 10일과 16일에는 서포면에서 4월 6일과 19일에는 곤양면 장터에서 각각 만세시위가 있었다. 4월 14일에는 중선포의 도로공사부역을 마치고 귀가하던 유영갑 등 1백여명이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하였다. 이러한 시위로 김진곤(金鎭坤, 1890~1963), 송지환(宋芝煥, 1903~1929), 신영안(申英安, 1899~1944), 유승갑(柳承甲, 1892~1960), 이규현(李圭玄, 1887~1972), 이영근(李永根, 1894~1922), 최범술(崔凡述, 1904~1979) 등이 일경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거나 태형을 맞았다. 사천군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1969년 8월 15일 이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