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서원은 원료 고려시대에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泰山祠)였다. 조선조에 들어서서 성종 14년(1483) 정극인의 향학당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고, 숙종 22년(1696) 최치원과 신잠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 무성서원으로 사액되었다.
1906년(병오년) 3월 고석진이 의병을 일으킬 것을 건의하자 최익현은 태인의 임병찬에게 편지를 보내 뜻을 같이할 것을 권하였다. 몇 차례의 서신 왕래를 통해 임병찬의 뜻을 확인한 최익현은 당시 거주하고 있던 충청남도 청양을 떠나 태인으로 향하였다. 임병찬을 제자로 받아들인 최익현은 회문산 북록의 상종성에 약 2개월간 머물며 거의를 준비하였다. 창의소를 지어 고종에게 올린 최익현은 임실·순창·담양 등지로 사람을 보내 동지를 규합하였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강회를 마친 뒤 그 자리에서 창의를 발의하니 따르는 자가 80여 명에 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