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식의 호는 수산이고, 다른 이름은 이태곤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의령이다. 곽종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1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유학자가 빠진 것을 통분하며, 한국독립을 기원하는 내용의 파리장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때 곽종석‧장석영‧김복한‧김창숙 등과 함께 유림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이 파리장서는 다시 파리에 한국대표로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에게 송달되었고, 국내외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1926년 김창숙을 중심으로 김화식‧송영호‧이봉로 등과 함께 내몽고 일대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독립군세력 양성 등을 위한 국내의 군자금 모금에 힘썼으나, 목표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자 제2차 군자금 모금을 실시하였다. 당시 일본 경찰이 군자금 모금을 감지하고 대대적 검거에 들어가 600여 명의 유림인사들이 체포‧구금되었을 때, 일본 경찰을 피해 수년 간 도피생활을 하였다.
2004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