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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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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김상태의병장 충절비

  • 시설명

    순국 김상태의병장 충절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의병운동

  • 소재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 36(금강공원 내)

  • 관할지청

    강원동부보훈지청

  • 관리자

    영월군

  • 사건연도

    1864년

  • 시설규모

    너비 1m, 높이 3m

  • 시설건립일

    1998-01-01

관련 사진

시설 내용
김상태는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강년과 의형제를 맺고 이강년 의병부대와 끝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유인석·이강년과 함께 만주로 들어가 백두산 주변의 무송 임강 등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정미의병 봉기 때 더욱 신출귀몰한 작전을 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1908년 이강년 민긍호 두 장군이 체포된 후 군사지휘권을 인계받아 3년간 수천 명의 부하를 이끌고 소백산맥을 근거로 해 의병활동을 했으며 일본 군경과 교전한 것이 무려 41회에 달했다.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단발령이 내려지자 울분을 참지 못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이강년 의병장과 손잡고 중군장이 되어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인석 대장의 휘하로 합세하여 경상, 충청, 강원 3개도에 걸쳐 일군 수 백명을 무찔러 의병사상 빛나는 공적을 세웠습니다. 이강년, 민긍호 두 장군이 1908년대에 모두 사로잡혀 처형되자 이후 3년간 수천 명의 부하를 홀로 통솔하고 일군과 싸웠습니다. 이에 경찰이 현상금을 걸자 1911년 6월14일 우중수의 밀고로 경북 풍기군 단산면 광암리 소백산 중턱에서 체포되어 대구경찰서로 압송됐는데 3년형을 선고받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단식 13일 만에 옥중에서 향년 50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김상태 의병장 충절비는 삼척김씨 종친회가 주축이 되어 1998년 3월 15일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