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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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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 석당 변상태 선생 기적비

  • 시설명

    지사 석당 변상태 선생 기적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민족주의운동

  • 소재지

    진전국가관리묘역 내

  • 관할지청

    경남동부보훈지청

  • 관리자

    진전면청년회(박종묵)

  • 사건연도

    1889년

  • 시설규모

    0

  • 시설건립일

    1982-01-01

관련 사진

시설 내용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1916년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 가입하였으며 1919년 2월 하순 서울에 있는 동지들로부터 상경하라는 연락을 받고 동지인 김관제(金觀濟)·이시영(李始榮)과 함께 상경하여 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그후 이들은 만세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것을 계획하고 각자 책임지역을 선정하였는데 그는 경남 서부지역을 담당하였다. 그리하여 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귀향한 그는 이희석(李喜錫)·조태식(趙台植)·이경형(李景 ), 창원의 이수룡·권태용(權泰容)·권영조(權寧祚)·권영대(權寧大)·변상섭(卞相攝), 고성의 황태익(黃泰益) 등과 함께 힘을 모아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이들은 거사일을 3월 28일의 장날로 정하고 당일 곳곳의 동지들과 함께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이어서 독립선언서와 선전격문을 살포하면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가 일경의 탄압으로 해산되자 그는 몸을 피해 권영대·권태용 등과 재기를 도모하고 거사를 준비하였다.그는 4월 3일 회집 장소인 진전면 양촌리 천변(川邊)에 큰 태극기를 세우고 진전면(鎭田面)·진북면(鎭北面)·진동면(鎭東面)에서 모여든 수천 명이 넘는 군중앞에서 "오늘부터 우리는 자유국(自由國)의 국민이다. 일본의 간여는 추호도 받아서는 안된다.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로 항일의식을 고취한 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일경의 탄압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변상태는 피체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西大門)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출옥후 그는 1944년 8월 의열단(義烈團)의 구여순(具汝淳)·이주순(李周順)등과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고 한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