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규는 충남 청양사람이다. 1919년 그는 청양군 목면 안심리에 거주하면서 정산향교 직원으로 있었다.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홍범섭 · 임의재선생 등이 독립만세운동을 결의해 4월 5일 장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5일 정산의 장날 하오 3시경 1백여 명의 장꾼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위하였는데 일본 헌병들이 무차별로 발포해 최윤안의사 등 아홉 분이 현장에서 순국했으며 일제 헌병이 이중 30여명을 강제 연행하자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제 헌병의 발포로 인하여 권흥규의사가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은 그의 장례식 때 더욱 격렬한 만세시위운동을 벌였고 이날부터 연 사흘간의 의거로 붙잡혀 태형을 받은 사람만도 166명에 이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