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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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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 시설명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기념관

  • 주제분류

    의열투쟁

  • 소재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매헌로 99(양재동) 매헌시민의 숲 내

  • 관할지청

    서울남부보훈지청

  • 관리자

    (사)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 사건연도

    1908년

  • 시설규모

    0

  • 시설건립일

    1988-12-01

관련 사진

시설 내용
윤봉길은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났다. 덕산보통학교를 자퇴한 뒤 오치서숙에서 수학하고, 19세 때인 1926년부터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으며, 20세 때에는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에는 월진회와 수암체육회를 조직하여 농촌운동 민족운동을 더욱 정열적으로 전개 하였다. 그는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 때인 1930년 3월6일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이라는 글을 써놓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청도를 거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 도착하였다. 일본군이 1932년 1월 28일 상해를 침공하여 점령한 후, 4월 29일 천장절 겸 상해 점령 전승경축 기념식을 홍구 공원에서 거행하게 되어 상해점령 일본군 수뇌들이 여기에 모이게 되자, 김구가 지휘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이에 특공작전을 감행할 것을 자원하였다. 윤봉길은 단신으로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상해점령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등 군·정 수뇌들 7명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데 성공하였다. 윤봉길은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5월25일 현지의 군법재판 단심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에 일본으로 이송되어 그해 12월19일 25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윤봉길의 업적과 살신성인 정신의 높은 뜻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며, 선양하기 위하여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국민들의 성금으로 서울 양재 시민의숲 안에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1988년 12월 1일에 준공된 매헌 윤봉길의사기념관은 대지 1,996평에 건평 743평,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서 윤의사의 유품과 생애사진, 훈장 그리고 항일독립운동 관련사진 등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