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장날이었던 1919년 4월 4일 정오에 문용기 장로를 비롯한 박영문, 장경춘, 서정만, 박도현 등 성도들과 교회에서 운영하던 도남학교 학생 등 200여 명이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했으며 장날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합류 대규모 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문용기 장로는 1878년 전북 익산시 오산면 관음부락에서 태어났다. 남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그는 24세 때 영명학교 한문교사로 부임한 후 전남 목포와 함경도 갑산 등지에서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이 벌어지자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중 41세 나이로 순국했다.
순국열사비는 1949년 4월 순국한 문용기 장로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익산시민이 뜻을 모아 건립했으며, 비문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써서 하사하였다. 한편 문용기 열사의 출신지인 익산군 오산면 소재지에는 순국열사기념비, 익산역 광장에는 삼일운동기념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