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석은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명은 돌석, 태흥, 태을, 대호이며 태백산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이듬해 19세의 어린 나이에 10여명의 동지들을 모아 영해 의병진을 창군, 활약하다 1896년 고종황제의 명으로 해산했다. 1905년 11월 을사5조약이 일제에 의해 강제체결되어,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906년 3월 장군도 영릉의병진을 창군하니 그 때 장군의 나이 29세였다. 장군은 최고 30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경상남북도, 강원도, 충청도에 걸친 넓은 지역에서 항쟁한 의병장이기도 했으나, 일월산, 백암산, 대둔산 등지에 요새를 두고 소수정예로 적을 섬멸하는 게릴라전에도 능했다. 그러나 1908년 11월 18일 부하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어 31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신돌석 생가는 본래 초가집으로 부친 신석주가 1850년경에 지었는데 일본 관헌들이 우리민족의 독립의지를 꺾기 위해 1940년에 불태워버렸다. 이후 1942년에 일부를 새로이 세워 기와집으로 꾸몄다가 1995년 초에 현재와 같은 초가집으로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