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은 1956년 3월 창녕군 영산면 동리 산4 (호국공원내)에 영산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영산결사대 24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천도교인 구중회·장진수·김추은 등을 중심으로 영산에서의 독립의거가 일찍부터 준비되었다. 이들은 의거일을 13일로 결정한 후 야간을 이용하여 태극기와 요약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도 준비하였다. 3월 13일 구중회·장진수·김추은·남경명 등 24명은 결사대를 조직한 후 이날 오후 2시 영산면 남산에 모여 「결사단원 맹세서」를 작성하여 각자 서명 날인하였다. 결사대원들은 풍물을 울리며 큰 태극기를 앞세워 영산읍내를 향해 행진하자 주민들과 장꾼들이 합류하여 600~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창녕경찰서에서 경관 1개대를 영산읍으로 급파하여 구중회·장진수·김추은 등을 체포 구금하였다. 남은 결사대원들은 오후 8시 남산봉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영산읍에서 시위한 후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창녕읍으로 몰려갔다. 그러자 일본경찰들이 3일 만에 시위 주모자들을 모두 검거하였다. 이날의 시위를 주도한 구중회·장진수·김추은·남경명 등은 징역 10월에서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