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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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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창립총회 터

  • 시설명

    독립협회창립총회 터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사적지

  • 주제분류

    한말구국운동

  •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82-1

  • 관할지청

    서울북부보훈지청

  • 관리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사건연도

    1896년

  • 시설규모

  • 시설건립일

관련 사진

시설 내용
독립협회창립총회 터는 영국 왕립아세아협회에서 소장한 '서울지도'(1902)에 광화문 앞 육조거리 동편으로 내부와 학부사이에 독립협회 창립 총회였던 외부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1896년 7월 2일 서재필의 발의로 예전 중추원 자리인 외부 건물을 빌어 창립총회를 가질 당시 독립협회는 독립문과 독립공원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고급관료클럽이었다. 그러나 1897년 8월 29일 모화관을 개수해 문을 연 독립관에서 첫 토론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시민과 학생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명실상부한 민중계몽단체로 면모를 일신하였다. 그리고 1898년 2월 21일 구국선언 상소를 올린 것을 시발로, 만민공동회 등을 통한 정치개혁운동을 본격화하였다. 이후 독립협회는 신지식층이 중심을 이룬 독립신문 계열과 개신 유학자들과 중인층이 중심을 이룬 황성신문 계열의 주도하에 1898년 12월 해산당할 때까지 민중과 함께 하는 점진적인 개화 개혁을 추구하며 자주·민권·자강운동을 전개하였다. 열강의 이권침탈과 내정간섭에 대한 반대운동을 통해 민족공동체의 주체성을 일깨웠고, 토론회와 의회개설운동을 통해 민중의 언로를 터주면서‘우리’라는 민족적 동질의식을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자주독립의 상징물로서 독립문의 건립, 개국기원절 경축행사의 개최, 태극기의 게양과 애국가의 보급 등 다양한 형태의 국가 상징의 보급을 통해 대중적 차원에서 애국심과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였다. 그후 미국으로 돌아간 서재필은 3ㆍ1운동 소식을 듣고 미국 조야의 여론을 형성하는 데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