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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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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 죽장 입암리 사적비

  • 시설명

    산남의진 죽장 입암리 사적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장소

  • 주제분류

    의병운동

  • 소재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산 25번지(포항보건고등학교 뒤편)

  • 관할지청

    경북남부보훈지청

  • 관리자

    입암서원

  • 사건연도

    1907년

  • 시설규모

    0

  • 시설건립일

    19850101

관련 사진

시설 내용
1907년 8월 하순 산남의진(山南義陣) 대장 정용기(鄭鏞基)는 관동(關東)으로 북상하기 위해 본진 선발대 100여 명을 거느리고 영일군 죽장면(竹場面)에 주둔하였다. 이때 일본군이 청송 방면에서 입암(立巖)으로 들어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에 정용기는 우재룡(禹在龍)·김일언(金一彦)·이세기(李世基) 세 부장을 각기 길목에 매복시키고, 자신의 본대는 9월 1일 새벽에 입암을 기습 공격하여 적을 섬멸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세기 부장이 입암에서 일본군 수명을 발견하고 성급하게 공격하다가 적의 복병에게 집중공격을 받아 패하였다. 이때 정용기는 갑작스런 포성을 듣고 밤중에 입암으로 진군하다가 일본군과 새벽까지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정용기 대장을 비롯한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권규섭(權奎燮) 등 수십명의 의병들이 전사하였다. 이로써 산남의진의 지휘부는 무너지고 정용기의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이 달려와 남은 의병을 수습하여 인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