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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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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조경한 선생 추모비

  • 시설명

    백강 조경한 선생 추모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해외운동

  • 소재지

    전라남도 순천시 연향동 1440 ~1519 1441번지

  • 관할지청

    전남동부보훈지청

  • 관리자

    순천시

  • 사건연도

    1940년

  • 시설규모

    비석1식

  • 시설건립일

    2009-02-28

관련 사진

시설 내용
조경한은 1900년 주암면 한동 마을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에 근거를 둔 독립단의 국내연락원으로 활약했다. 1924년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하여 덕신의숙, 계명학원 법정과에 다니면서 신채호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26년 만주에서 배달청년회의 배신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정의부 교민교과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1930년 한국독립당의 창립에 참여, 선전위원장에 임명되어 조직 및 훈련의 책임을 맡았고 1931년 지청천·김창환·황학수 등과 함께 한국독립군을 일으켜 만주 각지에서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1933년 뤄양군관학교의 교관에 임명되어 청년군사간부의 양성에 힘썼다. 1935년 민족혁명당에 참여했고 1937년 지청천 등과 조선혁명당을 창설하고 상무위원 겸 조직부장이 되었다. 1937년 8월 한국광복전선이 조직되자 선전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임시정부에서 군사학 편찬위원으로 일했으며, 1939년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1940년 충칭에서 한국독립당을 만들고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40년 9월에는 한국광복군 창군에 참여하였다. 1941년 12월 광복군장교훈련소가 설치되자, 송호성·나월환과 같이 훈련책임을 맡았으며, 1942년 10월에는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정훈조장으로 선전업무에 힘을 기울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징계심사분과위원장, 한국독립당 중앙조직부장, 국무위원회 부비서장 등을 역임했으며, 1944년에는 국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한국독립당 중앙상무 집행위원이 되었다. 추모비는 2009년 순천 금당 공원에 조형물과 함께 건립되었다. 조형물과 추모비는 전국 공모를 거쳐 양진옥 작가의 ‘빛의 소리’를 선정해 설치했다. 설치된 조형물은 조경한이 참여한 100여 회의 크고 작은 항일 전투 중 최대의 전과를 거두었던 대전자 전투를 형상화한 것으로 그의 애국심을 절벽에 피어나는 태극기로 형상화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