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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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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 항일운동 기념관

  • 시설명

    소안 항일운동 기념관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기념관

  • 주제분류

    기타

  • 소재지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소안로 263

  • 관할지청

    광주지방보훈청

  • 관리자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 사건연도

    1909년

  • 시설규모

    0

  • 시설건립일

    2003-08-31

관련 사진

시설 내용
2003년 10월 20일에 문을 연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소안의 애국선열들과 그들의 항일투쟁 정신을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주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소안도는 1909년 당사도 의거사건, 13년에 걸친 토지 소유권 소송 승리, 사립 소안학교 설립, 수의위친계, 소안 배달청년회 창립 등을 통해 줄기차게 조국 광복을 외쳤으며, 소안도 주민 8000명 중 800여명이 불령선인으로 감시를 받았던 곳이다. 송내호 등 20여 명의 독립유공자가 배출됐으며, 면민 전체가 독립 운동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항일의 함성이 거셌던 곳이다. 소안도 항일해방운동의 뿌리는 갑오년의 동학혁명에서 시작된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동학의 접주 나성대가 동학군을 이끌고 소안도에 들어와 군사훈련을 시켰다. 이 때 소안도 출신 이준화, 이순보, 이감락 등이 동학군에 합류했다 동학군의 군사 훈련 때 소안도 주민들은 군사들의 식량을 조달했다. 이준화는 1898년 1월 의병들을 이끌고 소안도 인근의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인본인 간수들을 처단했다. 일제하 소안도에서의 항일 운동은 소안 출신 송내호와 김경천, 정남국 등에 의해 주도됐다. 이들에 의해 조직된 수의위친계, 배달청년회, 소안노농대성회, 마르크르주의 사상단체 살자회, 일심단 등의 항일운동 조직이 소안도와 완도 일대의 항일 운동을 이끌었다. 후일 송내호는 서울청년회와 조선민흥회, 신간회 등의 중심인물로 활동했고 정남국은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조선인노동총동맹 위원장을 지냈다. 외딴 섬 소안도에 항일운동의 씨앗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중화학원과 사립 소안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1905년 궁납전이던 소안도의 토지를 강탈해 사유화한 것은 사도세자의 5세손 이기용 자작이었다. 소안 주민들은 토지를 되찾기 위해 1909년 전면토지소유권 반화청구소송을 제기한 뒤 무려 13년 동안이나 법전투쟁을 해 1922년 2월에 승소했다. 토지를 되찾은 소안도 사람들은 성금을 모아 소안 사립학교를 세웠다. 당시 소안 학교에는 인근의 노화, 청산은 물론 해남, 제주도에서까지 유학생들이 몰려올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