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농림학교 학생의 항일운동 기념비.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침략전쟁에 인력을 동원하기 위해 징병, 징용제를 실시하고 학생들에게 황민화교육을 강화하였다. 이에 안동 농림학교 학생들은 1944년 10월에 비밀리에 회합을 갖고 일본을 위해 개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조국을 위해 떳떳이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다짐하고「조선회복연구단」을 발족하였다. ‘조선의 독립 쟁취’, ‘신사참배 반대’, ‘일제 식민지교육 반대’ 등의 기본방침을 정하고 헌병대와 경찰서 기습 등의 적극적 대일투쟁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거사일을 앞두고 1945년 3월 1일 한국에서 추방당한 미선교사들이 두고간 영문서적을 강순원, 현필기가 남몰래 가져와 간수했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단원 명부까지 압수되면서 조선회복연구단 단원 51명이 일경에 체포됨으로써 계획은 좌절되었다. 체포된 이들 중에 20여 명은 실형을 받고 옥고를 치루고 해방된 후인 1945년 8월 17일에 석방되었다. 1978년 4월 20일 안동농림학교 동창회는 조국광복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학생들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