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4월 8일 목포에서 서상봉·강석봉 등이 남궁혁(南宮赫)·오도근(吳道根) 등 청년 학생들과 태극기와 경고문 등을 준비하여 목포 부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독립만세 시위를 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과 경찰은 기마부대와 군대까지 동원하여 무력으로 탄압하였다. 이 시위로 강석봉(姜錫奉, 1890~1956), 박복영(朴福永, 1890~1973), 박상렬(朴相烈, 1897~1981), 배치문(裵致文, 1890~1942), 서상봉(徐相鳳, 1870~1927), 서화일(徐化壹, 1881~1936), 곽우영(郭宇英), 남궁혁, 박상술(朴相述), 박상오(朴相五) 등 80여명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그 가운데 박상술은 일제의 고문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이 되어 이듬해 5월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끝내 순절하였다. 유당산공원화추진위원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983년 5월 15일 공원 내에 이 탑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