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되고 단발령 떨어지자 안동일원에서 의병을 일으킴. 일제와 맞서 싸우기 위해 군자금을 모으고 항일항쟁을 본격적으로 하려 했으나 대한제국 광무황제의 의병해산령이 떨어지자 자진 해산했음. 그러나 경술국치와 창씨개명 등으로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하자 “조상님이 물려주신 이름 석자 마저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며 패랭이를 쓰고 방랑길에 올랐고 영주 안정 생현리에 머물 장소를 정했으나 끝내 죽기를 결심, 36일간의 단식 끝에 1940년 9월 7일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