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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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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시설명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기념관

  • 주제분류

    애국계몽운동

  • 소재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624

  • 관할지청

    경기북부보훈지청

  • 관리자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 사건연도

  • 시설규모

    0

  • 시설건립일

    2011-11-27

관련 사진

시설 내용
여운형은 1886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골에서 출생하여 양평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고 1918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정당이라 할 수 있는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1919년에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여 조선독립청원서를 제출하는 한편 일본과 국내에 신한청년당 당원들을 파견하고 자신은 만주, 연해주 지역으로 가서 그 지역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전민족적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이후 1929년 상하이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가 1930년 징역 3년 판결을 받고 1932년까지 서대문 형무소와 대전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같은 해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며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해방 후 1947년 7월 19일 권총 피격으로 혜화동 로터리에서 62세의 일기로 서거하였다. 생가는 여운형이 1886년 출생해서 부친 탈상을 끝낸 뒤 서울로 이사 간 1908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생가는 6·25전쟁 중에 소실되었지만 2001년 양평 군민들의 노력으로 생가 터가 정비되고 이듬해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그 후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것을 계기로 서거 64주년인 2011년에 생가가 복원되었고 2011년 11월 개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