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이 1896년 ‘치하포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그해 5월 1일 새벽 해주감옥으로 붙잡혀간 후 7월초 인천감옥으로 이감되었다. 8~9월에 걸쳐 모두 세 차례 신문을 마치고 수감 중이던 김구 선생은 1898년 3월 탈옥할 때까지 2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하였다. ‘백범일지’에 의하면 1898년 3월 9일 인천감리서 감옥을 탈옥하였으며 당시 인천의 지리를 잘 모르는 상태였지만 용동마루턱, 천주교당 뾰족집, 화개동 마루턱, 북성고지 모래밭, 부평 등의 지명을 통해 자신의 탈옥 경로를 남겼다.
김구 선생은 1911년 안명근 사건과 신민회 사건으로 서대문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두 번째로 인천감옥에 투옥되었다. 당시 선생은 감옥에 있으면서 인천 축항공사(인천항 제1부두)에 동원 돼 노역에 시달리다 1915년 가출옥을 하였다.
김구 선생은 광복 후 고국에 돌아와 1946년 지방순회를 할 때 인천을 제일 먼저 찾았으며 인천시에서는 김구 선생과 그의 어머니의 겨레 사랑을 위한 헌신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97년 10월 27일 인천대공원 내에 김구 선생과 그의 어머니 동상을 세우고 백범광장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