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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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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 - 고성 독립운동 근거지

  • 시설명

    옥천사 - 고성 독립운동 근거지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 주제분류

    기타

  • 소재지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408

  • 관할지청

    경남서부보훈지청

  • 관리자

    옥천사

  • 사건연도

    0년

  • 시설규모

  • 시설건립일

    1976-01-01

관련 사진

안내판 사진

시설 내용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성의 유서 깊은 사찰로, 일제시기에는 경남지역 애국지사들의 주요한 활동거점이기도 하였다. 특히 승려 신화수(申華秀)와 한봉진(韓奉眞)은 3·1운동 전후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애국지사 변상태(卞相泰)·이주현(李周賢) 등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면서 이들이 거사를 논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뿐만 아니라 본인들도 군자금 모집 등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21년 전국의 동지를 규합하여 제2차 독립만세운동을 도모하다가 체포된 옥천사 승려 신화수는 1919년 3ㆍ1운동 발발 후 4월부터 서울에서 김상옥(金相玉) 등과 함께 혁신단을 조직하고 기관지로 『혁신공보』를 발행·배포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1923년에는 의열단원으로 폭탄과 권총 등의 무기를 휴대한 채 상하이[上海]로부터 귀국한 김상옥에게 군자금 1, 000원을 제공해 준 혐의로 체포되기도 하였다. 한봉진은 1919년 무렵 대한독립단에 가입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으로 군자금 모집 사명을 띠고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던 윤영백(尹永伯)과 함께 국내에서의 연락책임을 임무를 맡고 옥천사를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였다. 절은 창건 이후에 수차례 중창하였으나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완전 소실되었다가 인조 17년(1639년)에 의오대사에 의해 재건되었다. 경내의 보장각에는 보물 제495호 '임자명 반자'와 지장모살탱, 시왕탱, 옥천사대종 등 지방 문화재 100여 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백연암, 청연암, 연대암의 부속암자가 있는 고찰로 경남 지방기념물 제140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