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1919년 2월 28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이 모여 의견을 나눈 곳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23인은 3·1운동 거사 전날인 1919년 2월 28일 서로 지면을 익히고 다음 날 독립선언식 절차를 최종 점검하기 위해 가회동 손병희의 집에 모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식 장소인 탑골공원에 학생들이 집합하기로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급히 선언식 장소를 인사동 명월관 지점 태화관으로 변경하였다. 이 변경사실이 학생단 측에 전달되지 않아 인해 거사 당일 일정에 다소의 혼선이 빚어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