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11일 부산 좌천동 일대에서 당시 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박시영과 학생 김응수·송명진·김순이·김난출·박정수·김반수 등의 사전 준비로 수백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서 김난출(金蘭出), 김반수(金班守, 1904~미상), 김복선(金福善), 김봉애(金奉愛), 김순이(金順伊), 김신복(金新福), 김응수(金應守, 1901~1979), 박시연(朴時淵), 박연(朴蓮), 박정수(朴貞守), 송명진(宋明進), 심순의(沈順義, 1903~미상), 이명시(李明施, 1902~1974), 주경애(朱敬愛) 등이 피체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