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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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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김영길·이영환 애국지사 추모비

  • 시설명

    김기용·김영길·이영환 애국지사 추모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의열투쟁

  • 소재지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215-20(마현산공원 내)

  • 관할지청

    경북남부보훈지청

  • 관리자

    영천항일독립운동선양사업회

  • 사건연도

    1928년

  • 시설규모

  • 시설건립일

    2002-11-01

관련 사진

시설 내용
김기용은 경북 영천 사람이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한 장진홍과 회합하여 1928년 결사대원이 된 후 영천경찰서와 고향의 친일부호인 이인석의 집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던 중 일경에 피체되었다. 1930년 4월 24일 대구복심법언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 예비죄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김영길은 1942년 박기수 등 6명과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하여 1943년 4월 영천신사에 방화하여 불태웠고, 이후 다시 대구신사에도 방화를 기도했으나 이는 실패하였다. 같은 해 5월, 대구에 주둔해 있는 일본군 80연대의 막사 안에 세균을 투입하고 일본군 24부대 병기고를 폭파하는 등 대구에 주둔한 일본군을 끊임없이 괴롭혔으며, 한편으로는 야간에 대구시내 관공서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시내에 일본군의 패전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하는 등 민족의식을 북돋웠다. 1944년 군자금 모금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광복을 맞았다. 이영환은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1943년 일본 국왕 및 정부요인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던 중 거사계획이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잡히기 직전 만주로 탈출하였다. 그 뒤 1944년에 다시 국내로 잠입, 같은 해 5월 항일선언문을 작성, 경상도 일대에 비밀리에 배부한 뒤 7월에는 한인 징용자들이 탑승한 열차를 급습하는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에는 일본군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식수에 독약을 살포하고 일본군병영을 방화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이어 11월에는 대구헌병대에 방화하려 하였으나, 거사 직전 밀고로 영천 자택에서 잡혀 이듬해 5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