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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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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종선생순국기념비

  • 시설명

    김한종선생순국기념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의열투쟁

  • 소재지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 쌍송삼거리

  • 관할지청

    충남서부보훈지청

  • 관리자

    사단법인예산모현사업회

  • 사건연도

    1883년

  • 시설규모

  • 시설건립일

    1974-10-03

관련 사진

안내판 사진

시설 내용
김한종은 1883년 광시면 신흥리에서 출생하였다. 김한종 의사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충효의 가학과 유학을 전수 받아 성품이 강직 과감하고 정의감이 강했으며, 이러한 사상적 기반 위에 외세의 침탈을 목격하면서 척사적 민족주의를 견지하여 갔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각 지로 동지를 찾아다니며 모으고, 조선총독의 부여 시찰 소식을 듣고는 동지들과 함께 암살 계획을 협의하였다. 그러던 중 1917년 6월 혁명적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에 가입 충청도지부장이 되었다. 이후 총사령 박상진, 경상도지부장 채기중과 함께 대한 광복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였다. 우선 충청도지부를 홍성·예산·아산·청양·천안 등지에 설치하고, 자신의 친척들과 과거 의병 동지들을 규합하여 조직을 확대하였다. 그리고 독립 군자금 모집 활동과 악덕 지주 및 친일 관리 처단에 앞장섰다. 1917년 11월에는 경북 칠곡의 악덕 지주를 처단하였고, 이듬해 1월에는 포악한 친일 관리 도고면장을 처단함으로써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도고면장 처단 직후 1918년 단원 중 이종국이 천안 경찰서에 밀고하여 광복단 조직이 발각되어 그해 1월 28일 자택에서 잡혔으며, 결국 1921년 음력 7월 8일 민족 해방과 조국 독립의 꿈을 가슴에 묻은 채, 38세의 나이에 대구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