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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독립운동 현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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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의거 기적비

  • 시설명

    기미독립의거 기적비

  • 주제

    독립운동

  • 종류

    비석

  • 주제분류

    3·1운동

  • 소재지

    김해대로 2050 (연지공원 내 독립기념광장)

  • 관할지청

    경남동부보훈지청

  • 관리자

    김해시

  • 사건연도

    1919년

  • 시설규모

    0

  • 시설건립일

    1990-03-01

관련 사진

시설 내용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30일 밤 김해읍 중앙거리에서 몇몇이 독립만세 시위를 하였고, 3월 31일 진영 장날과 4월 2일 김해읍 장날에도 독립만세 시위가 있었다. 4월 5일 진영 장날에도 3천여명이 흔들며 독립만세 시위를 하며 일본군 헌병주재소에 몰려갔다. 이러한 독립만세 시위는 4월 10일 명호시장 날날 시위, 11일 진목리 시위, 12일 무계리 시장 시위로 이어져 3천여명이 참여한 무계리 시위 때는 일제 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손명조·김선오·김용이 등이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러한 시위로 김석암(金石岩, 1891~1959), 김선오(金善五, 1865~1919), 김승태(金升泰, 1878~1940), 김용이(金龍伊, 1891~1919), 김용호(金用浩, 1893~1927), 김정태(金廷泰, 1900~1958), 김종훤(金鍾煊, 1892~1948), 손명조(孫明祚, 1884~1919), 송상진(宋相振, 1887~1967), 송세탁(宋世卓, 1884~1939), 이강석(李康奭, 1879~1923), 이진석(李鎭奭, 1896~1970), 임학찬(任學讚, 1890~1952), 장위식(張渭式, 1890~1942), 조영우(趙鏞宇, 1887~1923), 조항래(趙恒來, 1884~1949), 최현호(崔鉉浩, 1890~1974) 등이 현장에서 순국하거나 피체되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해시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1990년 3월 1일 이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