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직 선생은 1895년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양민학살, 고문 등의 만행을 여론에 환기시키고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이승만의 비서로서 구미위원부에서 활약하면서 일황에게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라는 이승만의 친서를 일본공사관에 전달, 1921년 임시정부 외교부 참사 황진남과 유럽제국에 일본이 침략만행을 규탄하는 외교공세를 펼쳤으며 1943년 구미위원부 무관으로 이승만을 도와 한미외교 교섭에 기여하였다. 부여군에서는 임병직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2003년 11월 그의 생가를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