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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등대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인천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에 있는 팔미도 등대는 클라크 대위와 팔미도 등대원의 첩보수집 노력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전적지이다. 덕적도와 영흥도를 점령한 유엔군은 팔미도를 확보하여 인천으로 들어가는 수로를 확보하려 하였다. 이에 미 해군 클라크(Eugene Clark) 대위는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정보수집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는 서해지구 책임자인 앤드류스(William G. Andrews) 소장의 주선으로 2명의 한국인 통역과 영국 해군 구축함 췌리티호(H.M.S. Charity)를 타고 와서 9월 1일 한국 해군함정 PC703함에 옮겨 탄 다음, 그날 저녁 영흥도에 도착하였다. 클라크 대위는 국군 정보장교인 계인주 대령과 연정 중령, 그리고 등대원들의 협조를 받으면서 정보수집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는 먼저 청소년들을 동원하여 해안감시반을 조직하고 일부의 청년들을 인천과 서울 등지로 파견 침투시켜 북한군 포대의 위치와 수, 해벽의 높이 그리고 서울-인천 간의 부대집결소와 이동로 등을 조사 보고하는 동시에 자신도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인천항으로 노를 저어 들어가 직접 정보를 입수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팔미도 등대의 항해등을 점화하여 국군 및 유엔군 함선들이 비어수로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게 하였고 북한군이 국군과 유엔군의 상륙전을 예상하고 있는지 혹은 북한군이 방어대책을 세우고 있는지에 대하여 중점을 두어 각 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자 서남해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지정학적으로 해상교통 흐름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항로표시의 효시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1902년 공사를 시작해 1903년 6월 완공되었으며 2003년에는 한국 등대 설치 100주년을 기념하여 지하 1층, 지상 4층, 높이 31m의 새로운 등대가 건설되며 1903년에 세워진 등대는 더 이상 등대 역할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100년 동안 불을 밝혀 온 팔미도 등대는 해양문화유산과 인천광역시 지방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영구 보존되고 있다.
펀치볼지구 전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양구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에 펀치볼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과 미군을 추모하기 위해 육군 제3군단에서 1958년 3월 15일 이 비를 세웠다. 펀치볼이라는 지명은 이 당시 해안분지의 지형을 본 미 종군기자가 펀치(칵테일 종류)를 담는 그릇(Punch bowl)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해 유래되었다. 펀치볼 전투는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전투력을 신속히 재정비한 인민군 제2군단이 펀치볼지역의 돌출된 지형을 이용하여 국군 제1해병연대와 미 해병 제1사단을 분리시키기 위한 작전을 전개하였는데 국군은 전략적 요충인 펀치볼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 해병 제1사단과 배속된 국군 제1해병연대는 펀치볼과 그 북쪽 감재고지를 목표로 선제공격을 하게 되었다. 북한군 제1사단은 도로상에 지뢰를 매설하고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나 한·미 해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포병 및 근접 항공지원사격을 지원받아 3주동안 치열한 혈전을 벌인 끝에 인민군 제1사단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펀치볼과 주변 고지들을 확보하였다. 이 전투의 성과는 북한군 사살 3, 739명 포로 767명을, 아군 피해는 전사 506명, 부상 1, 602명, 실종 11명이었다.
평택시 보훈공원
시설 : 공원
사건 연도 : 0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평택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 평택시 현충탑(현덕면)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에 평택군 출신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 1, 172위를 추모하기 위해 평택군에서 1987년 12월 26일 이 탑을 세웠다. 평택읍이 시로 승격되자 군에서 관리하던 현충탑을 시에 인계하고 평택군지역 관내 1, 172기의 영령을 모시기 위해 아산만 방조제의 관광단지 내에 새로운 현충탑을 건립함으로써 군민들로 하여금 국민적 우의 상징과 자유민주주의의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도 저 햇빛 속에 그대들 꽃다운 모습이 보이고 지금도 바람결 속에 그대들 고운 음성 들리네.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바쳤기에 가고도 가지 않은 그대들이라. 조국의 산천과 역사와 함께 길이 살리라. 정든 조국, 정든 고향, 여기서 그대들 길이 살리라. ● 평택3.1독립운동기념조형물 평택3.1독립운동 기념조형물 '그날의 함성'은 높이 6.9미터로 기단은 평택 최초의 만세 운동이 벌어졌던 계두봉을 상징하며, 기단 위에는 만세 시위를 벌이는 군중을 표현했다. 중심 조형물에는 3.1독립선언서가 국내외에서 가장 큰 규모인 지금 5.5미터 오석에 새계 평택3.1운동의 광범위함을 표현했다. 벽면 조형물에는 100년 전 사용했던 태극기와 평택3.1만세운동 봉기도, 평택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창립 취지문, 평택3.1만세운동 약사, 평택의 독립운동가, 헌시, 100주년 기념조형물 작품해설 등이 담겨 있다. ● 무공수훈자 공적비 6.25의 국난을 당하여 국토를 보존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과 부모처자를 불고하고 적군과 용감히 싸워서 빛나는 공훈을 기리고 후세들로 하여금 영원토록 애국애족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이 공적비를 건립하노라 ● 6.25참전공적비 여기 햇살같이 찬란하고 눈부신 기백 정의의 부르짖음으로 불타오르는 횃불이 있다, 거룩한 청춘의 피 속에 최후까지 싸우다 꽃잎처럼 흩어진 호국의 신 자유조국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이 땅을 지키니 님들의 끝없는 나라 정신으로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이 비를 세워 남기노라
평택3·1독립운동기념공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기도 평택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평택3.1독립운동기념비 평택에서는 1919년 3월 9일 현덕면 계두봉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평택 전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수원 이남지역 최초의 평택3.1만세운동은 안성, 화성, 천안 등 남한의 3대 만세운동 항쟁지보다 앞서 일어났다. 전국에서도 가장 뜨거운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평택의 3.1만세운동은 일제가 '광포하다'는 표현으로 기록될 만큼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평택3.1만세운동은 각계각층에서 대규모로 전개되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나라를 되찾으려는 민중의 의지를 꺽지는 못했다. 이 기념비는 시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졌으며, 후세들의 애국심 항양과 우리 평택, 나아가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평택3.1독립운동선열추모비 이 추모비는 1919년 평택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 희생되신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내 고장 평택의 독립운동가들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그로 인해 대통령장을 비롯해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등 정부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았다. 우리 후손들은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길이 되새겨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위한 평택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손들에게 같이 물려주기 위해 시민들의 정성스러운 모금운동으로 이 선열추모비를 건립하여 선조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자 한다
평산사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1945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라남도 무안군
관할지청 : 전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최익현·기우만·박임상 등 3인 유학자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받드는 사당.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박임상은 기우만 의진에 참여하였고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제자 수십 명을 규합하여 최익현의 의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최익현이 대마도로 잡혀가 순국하자 심상3년(心喪三年 : 마음속으로 복을 입는 것)을 마치고 중암 김평묵의 유배지였던 지도(智島)에 두류단(頭流壇)을 설치하고 이항로, 기정진, 김평묵, 최익현 4인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 후 최익현·기우만의 사우를 건립코자 부지를 다듬다가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어 뜻을 못 이루었다. 1944년 박임상은 아들 현풍에게 사우를 꼭 세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거하였다. 1946년 1월 1일 박임상의 제자들과 자손은 합심하여 평산사를 건립하고 최익현․기우만 두 의병장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2년 후에는 박임상도 배향하여 매년 음력 3월 10일에 평산사에서 제사를 받들고 있다. 평산사는 향토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평화의 발
시설 : 조형물
사건 연도 : 2015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파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교원 중사 등 8인은 北 지뢰도발에 의연히 대처해 국토수호의 의무를 완수했고, 이들의 국토수호 정신은 여타 장병은 물론 국민에게까지 이어져, 북한 도발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는 국민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로써 북한으로부터 '16.8.25성명을 이끌어냈고, 장기적으로도 국민 애국심 함양에 크게 공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포항지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에 포항지구 전투를 기념하고 전몰한 국군과 학도의용군을 추모하기 위해 국제관광공사에서 1979년 12월 30일 이 비를 세웠다. 1950년 8, 9월은 피아간 낙동강전선의 공방전이 가장 치열했다. 북한군은 제2군단의 제5, 제12사단 및 366부대와 국군 및 미 3개 특수임무부대, 제7함대 일부, 제5공군 등이 상호 대치하면서 격전을 벌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포항지역을 포함한 낙동강전선에서 용전분투하여 방어함으로써 결국은 북진의 계기가 되었다. 이 전투는 낙동강 전선의 공방전이 치열하던 1950년 8월 9일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5사단과 12사단 및 366부대가 경주, 울산, 부산으로 진출할 목적으로 포항을 점령했을 때 국군 제3사단과 수도사단 독립 17연대 민부대와 경찰, 학도의용군 그리고 미군 특수임무부대와 합동으로 44일간의 혈전을 감행한 결과 동해안의 요충지인 이 지역을 탈환한 전투이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동의 용향 여기 형산강변의 격전지 충용한 국군 제3사단 및 지원부대의 장병들은 유엔군의 도움을 받으면서 44일간의 혈전을 치르어 북한군 2개 사단의 집중공격을 끝내 물리치고 말았으니 이 터전을 지킴에 있어서는 호국의 생명선이요, 쳐나감에 있어서는 북진의 시발점이었다.
포천시 6·25 참전 유공자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포천 양문리 38휴게소 내에 6·25전쟁에서 산화한 포천시 출신 전몰군경과 참전유공자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포천시 6·25 참전 유공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6·25참전유공자회 포천시지회는 이곳 출신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후세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4년 7월 27일 이 탑을 준공하였다. 6·25전쟁 기간 포천 시민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북한군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포천시 현충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탑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순국하신 포천 지역 출신 호국 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시민의 정성을 모아 건립되었다. 1966년 건립된 기존에 있던 충혼탑은 탑신만 이 자리에 옮겨 같이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의 탑은 1994년 재건축된 것이다.
포항지구 전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동 포항기상대 옆에 포항지구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던 국군의 전투상을 기념하기 위해 육군 제1205건설공병단에서 1959년 3월 31일 이 비를 세웠다. 1950년 8, 9월은 피아간 낙동강전선의 공방전이 가장 치열했다. 북한군은 제2군단의 제5, 제12사단 및 366부대와 국군 및 미 3개 특수임무부대, 제7함대 일부, 제5공군 등이 상호 대치하면서 격전을 벌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포항지역을 포함한 낙동강전선에서 용전분투하여 방어함으로써 결국은 북진의 계기가 되었다. 이 전투는 낙동강 전선의 공방전이 치열하던 1950년 8월 9일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5사단과 12사단 및 366부대가 경주, 울산, 부산으로 진출할 목적으로 포항을 점령했을 때 국군 제3사단과 수도사단 독립 17연대 민부대와 경찰, 학도의용군 그리고 미군 특수임무부대와 합동으로 44일간의 혈전을 감행한 결과 동해안의 요충지인 이 지역을 탈환한 전투이다. 이 전적비는 포항시 육거리에 건립되어 있었으나 그후 1969년 4월 20일 송도동의 현 위치로 이전 건립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해에 솟은 햇빛은 이 강산을 빛내거니와 포항에 벌어진 이 전투는 우리 역사를 새롭게 했도다. 단기 4283년 8월 15일, 17일에 걸친 공산군 제5사단은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포항을 점령하였으나 우리 수도사단, 민부대, 브래들리부대 및 1연대, 26연대의 반격으로 8월 18일 포항을 탈환하였으나 우리 제3사단은 9월 1일부터 5일에 이르기까지 계속 침공하여 오는 적을 송학동 221고지, 145고지에 뻗치는 방어선에서 치열한 격퇴와 저지를 계속하던 중 적 제25사단이 경주로, 제12사단이 영천으로, 제15사단은 우리 제3사단 정면으로 일제 총공격을 감행하여 왔다. 이에 우리 제3사단은 우군 총반격이 개시되기까지 적의 치명적인 반격을 가하면서 끝끝내 방어에 성공하였다. 우리 용사들의 과감무쌍한 이 혈투사는 자손만대에 영원히 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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