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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김해시 6. 25 및 베트남 참전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전공비는 6ㆍ25전쟁을 맞아 온몸을 바쳐 풍전등화에 처한 조국을 구한 공훈을 기리고 아울러 조국의 부름을 받아 머나먼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대한용사의 용맹을 빛내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한 김해시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것이다. 이 전공탑비는 2009년 11월 13일에 준공하였으며, 현재 김해시 6ㆍ25참전자 2229명 및 월남전 참전자 1608명들의 이름이 훈격별로 새겨져 있다.
김포시 6·25 참전 유공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김포시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포시 6‧25 참전유공자탑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 시까지 국가 운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각 전투에서 북한군의 침략을 막아냈던 김포시 6·25참전 국가유공자 393명의 이름을 탑 후면에 새겨 후손들에게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김포시에서 2007년 12월 건립하였다.
김풍익 중령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남도 장성군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고 김풍익 중령 약력 및 공적 1921. 8. 6.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출생 1941. 3. 31. 선린상업학교 졸업(제34회) 1948. 10. 11. 육군 소위 임관(육사 7특) 1950. 5. 포병학교 제1교도대대장 1950. 6. 26. 의정부 금오리전투에서 전사 1950. 8 .24. 육군중령으로 추서 1950. 12. 30 을지 및 충무 무공훈장 수여
김인전선생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6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인전은 1876년 10월 7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촌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일찍부터 개화사상을 수용하여 근대적 사고를 갖고 있었고, 또한 27세 때인 1903년에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이 시기 선생은 1906년 11월 가산을 출연하여 고향인 충남 서천군 화양면에 중등과정의 한영학교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교육 계몽운동에 뛰어 들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현실화되자 선생은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14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선생은 전주 서문외교회의 목사로 부임하여 목회활동, 예수교 장로회 성경학교 교수·전북노회장 등의 교직을 이용한 전도활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중국 상해로 망명을 결심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무장 독립투쟁의 필요성을 새삼 인식하기 시작하여 1922년 10월 1일 상해에서 한국노병회의 조직을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 심신의 피로가 겹쳐 상해 동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순국하였다. 1980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았다.
김구선생 은거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6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전라남도 보성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비는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제를 응징코자 일본장교를 살해하고 옥고를 치르던 중 1898년 3월 9일 인천감옥에서 탈옥하여 이곳 쇠실에서 달포 여를 은거하며 동국사기를 가르치며 민족정기를 일깨웠다. 떠날 때 이별의 아쉬움을 담은 이별난시를 남긴 후 중국으로 망망하였고, 해방 후 귀국하여 쇠실의 집집마다 친필휘호를 써 보내 은거의 깊은 인연을 이어갔다. 백범 김구선생의 공적 및 애국정신을 받들고자 이곳에 추모비를 세웠다.
김원주무관 흉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2017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남도 목포시
관할지청 : 전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故김원 주무관은 해양수산부 남해어업관리단 어업감독공무원으로서 특별사법경찰관(리) 지명을 받아, 국민의 재산 보호 및 해양주권 수호를 위해 힘써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위험성이 현저한 직무를 수행 중 사망하여,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흉상을 건립함.
김해 공병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 육군 공병은 북한 괴뢰의 적색침략에서 국토를 방위하는 성전을 통하여 항상 전선의 최선봉에서 그야말로 육탄으로 전투공병의 희생적 정신을 배양, 발휘하고 포연탄우 아래 공병특유 화목단결의 전통을 공고히 하여 영원불멸의 공병 전통을 확립하며 성전수행에 앞장섬. ○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전 공병의 더욱더 큰 노력과 충성을 맹세하고, 모든 공병장병의 눈물겨운 노력을 찬양하고 존경하며 특히 빛나는 공병의 역사와 전통을 창조하고 진작하는 기반이 되고 희생하신 38명의 전사자 포함 1천 5백여주 공병전우의 충혼과 명복을 빌고 영세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공병 상징탑임.
김인전선생흉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76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인전은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1906년 가산을 정리하여 교육계몽운동의 일환으로 한영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14년 독립운동 비밀결사회인 송죽형제회를 조직하고 1919년 3.1만세운동의 전라북도 지도자로 만세운동에 관여하였다. 1920년 인성학교 교장으로 교육현장에서 직접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1922년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의 유지 강화 등 독립운동의 활성에 온 힘을 쏟으며 한국 노병회를 발기하는 등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하시다 1923년 5월 과로로 순직하였다. 정부에서는 1993년 중국에서 선생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묘지 임시정부 묘역에 안정하였으며, 2004년 3월 김인전선생 추모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선생의 나라사랑정신을 후세에 계승시키기 위해 흉상을 건립하였다.
김인전목사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76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충청남도 서천(舒川) 사람이다. 을미사변 등 국내정세가 혼란하던 대한제국(大韓帝國) 시기에 일찍부터 항일운동에 주력하다가 1910년을 전후로 일제의 침략이 완전히 표면화되면서부터 국내에서의 항일독립운동보다도 많은 우국지사와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있는 만주 중국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성립되자 상해로 거처를 옮겨 임시정부의 소속원으로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20년 2월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정원(議政院) 재무예산위원(財務豫算委員)으로 피선되자 임시의정원의 살림을 도맡아 하였다. 즉 의정원에서는 인구세(人口稅)의 징수, 국내외에서의 독립공채 발행, 구국(救國) 활동을 위한 재정단(財政團)을 조직하는 일을 맡았으나 예산과 결산만큼은 행정부에 전담하였다. 동년 4월에는 의정원 정무조사특별위원(政務調査特別委員)이 되어 군사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때부터 임시정부의 대외군사활동이 활발해지던 시기이므로 그는 장기적 독립전쟁을 위해 지구력과 규율을 확보하는 방법으로서 군사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군사회의의 개최와 군인학과의 개설, 사업부의 설치, 국민의용병 등을 모집하여 대오를 편성하게 하였다. 또한 군사교육의 실시와 독립전쟁을 하기 위한 지역 선정, 외국의 사관학교에 무관학생(武官學生)을 파견하고 군사선전대를 마련하는 등 직접적 전쟁에 대비키 위한 전열을 가다듬는 등 안건을 내세워 실천토록 하였다. 이렇듯 의정원의 안건설정, 임시정부의 시정방침 등 활발한 활동으로 1920년 4월 의정원 부의장에 선출되었으며, 1921년 5월 사임할 때까지 임시 의정원을 이끌었다. 1920년 9월에는 임시정부와 태평양회의 연구회가 협의하여 국내외 각 방면에서의 활동을 분담하게 되었는데 그는 남한(南韓) 지역의 기독교와의 연락책임자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동년 11월 9일에는 상해 대한인 거류민단의 본구 의원에 당선되어 한진교(韓鎭敎) 서병호(徐丙浩) 이유필(李裕弼) 등과 함께 교민의 복지증진을 위해서 노력하였으며, 동년 11월에는 임시정부 재무부 비서국장 겸 임시공채관리국장(臨時公債管理局長)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921년 3월에는 대한예수교진정회(大韓耶蘇敎陳情會) 서기로 선출되어 독립운동을 선언하였으며, 동년 5월에는 안창호(安昌浩) 등과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를 설립하여 한 중간의 유대강화에 기여하는 한편 임시정부의 학무총장(學務總長) 대리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동년 8월에는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 서기로 임명되어 자금조달에 전념하였으며, 11월에는 의정원 의원 25명이 연서(連署)한 독립청원서를 태평양회의에 제출하였다. 1922년 2월에는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全院委員長)에 선출되었으며, 동년 4월에는 제4대 의정원 의장에 선출되어 임시정부의 의정활동을 이끌었다. 동년 7월에는 독립운동자들의 단합을 위하여 안창호 김덕진(金德鎭) 최 일(崔日) 등과 함께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조직하여 그 회원이 되었으며, 9월에는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의 교육과 간사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2년 10월에는 김 구 조상섭(趙尙燮) 이유필(李裕弼) 여운형(呂運亨) 등과 한국노병회(勞兵會)를 발기하여 군대 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 조달에 주력하였는데 그는 노병회 이사에 선임되었으며, 1923년 4월에는 경리부원으로 활동하였다. 노병회는 1932년 10월 해산할 때까지 무장 항일투쟁을 위한 간부양성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일생을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헌신하던 그는 1923년 5월 과로로 순국하니, 임시정부의 모든 요인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슬픔을 같이하였으며, 상해 외국인묘지(b39)에 안장하였다. (1993년 유해봉환, 서울현충원 안장)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수곡·김준운·권규섭·권태용·한상택 애국지사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6년
주제 : 문화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는 2002년 7월 1일 영천 출신 애국지사 김수곡, 김준운, 권규섭, 권태용, 한상택의 공훈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732-1(성환산공원내)에 애국지사추모비를 건립하였다. 권규섭(?~1907) 선생은 1906년 산남의진에 참가, 산남의진의 좌영장에 임명, 동년 10월 영일 입암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권태용(1920~?) 선생은 1944년 불교전문학교 재학중에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어 대구 24부대에 입영하였다. 8월 8일 동지 김이현 등과 함께 탈출에 성공, 대구 팔공산에 은신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수곡(?~1910) 선생은 정환직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일본군에 피체되어 교수형을 당했다. 김준운(1855~1925) 선생은 신녕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게 영천 3·1독립운동 참가를 권유하다가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상택(1909~?) 선생은 1928년에 비밀결사 적우동맹(赤友同盟)에 가입, 사회과학 연구를 통한 항일의식을 고양하다가 체포되어 집행유예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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