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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김천 부항지서 망루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48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부항지서 망루는 김천시 부항면 사등리 684에 위치해 있는 사각형 망루로 6·25전쟁 때 경찰이 운용한 망루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전적시설이다. 부항지서 망루를 중심으로 하여 1951년 10월경 부항지역 주민과 경찰이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 산하 빨치산과 전투를 벌여 혁혁한 전과를 세우기도 하였다. 부항지역 전투는 경찰과 민간인의 협조로 적의 공격을 막아낸 전투로서 6·25전사상 손꼽히는 전투이기도 하다.
김천 베트남참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월남참전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김천시는 2006년 4월 세계 평화와 자유민주주의 십자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우리 국군의 용맹을 크게 떨친 김천 출신 베트남참전유공자의 공적과 호국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김천시 대광동 881-1(환경공원 내)에 베트남참전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기념비 건립에 김천 출신 참전전우 228명의 정성어린 모금도 큰 보탬이 되었다.
김화지구 합동 순의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기타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철원군, 백골사단, 합동순의비건립추진위원회는 1984년 6월 6일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당고개에 김화지역에서 희생된 반공인사 및 가족 78위의 넋을 추모하고 북한군의 학살만행을 널리 고발하고자 합동순의비를 건립하였다. 김화지역은 38선 이북 지역으로써 공산치하에 있었는데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탈출한 김화지역 주민은 반공활동의 거점을 구축하고 활동하여 오다가 북한군이 이 지역에서 축출될 때 반공인사 및 가족 등 78명을 연행하여 사곡리 당고개에서 무참히 학살하였다. 학살당한 반공인사와 가족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955년 9월 30월 이 자리에서 처음 위령제를 거행하였다.
김익상 의거지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21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김익상은 1895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광성연초공사의 기계감독으로 한동안 근무하였다. 그후 중국으로 건너간 김익상은 북경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의열단에서 조선총독부 폭파 지령을 받고 서울로 잠입한 김익상은 1921년 9월 12일 전기수리공으로 가장하고 남산 중턱 왜성대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비서과 인사계실과 회계과에 폭탄 2개를 던졌다. 이 가운데 하나는 불발하고 회계과에 던진 폭탄이 터져 기물을 파손하였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거사 직후 피신하여 북경으로 돌아온 김익상은 1922년 2월 상해로 가서 동지 오성륜과 함께 2월 28일 오후 3시 반경 상해 세관 부두에서 필리핀에서 도착한 일본 전육군대신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육군대장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총탄을 발사하였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체포되어 일본 나가사키[長崎]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다.
김풍익중령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의정부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기도 의정부시 자일동에 적 전차 격파후 사망한 김풍익 중령을 추모하기 위해 전투병과학교에서 1988년 10월 25일 전적비를 건립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포천군 소을면 송우리를 탈취한 적 전차는 6월 26일 새벽 단독으로 포천군 소흘면 축석령을 향해 서서히 남하하고 있었다. 금오리에 위치한 105밀리 포대에서는 포신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쉴새없이 포사격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소총도, 57밀리 대전차포도, 2.36인치로켓 포도 적 전차를 파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곳에서 전차를 저지하지 못하면 의정부는 물론이고 수도 서울의 함락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 김풍익 대대장은 적의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포병의 직접 사격 뿐이라고 적 전차와 맞서기로 결심하였다. 포병진지로 달려간 김풍익 소령은 포대장인 정세풍 대위, 그리고 분대원 6명으로 1개 결사대를 편성하여 직접 인솔하고 축석령이 잘 보이는 고개 밑으로 1.6Km까지 전진, 포 1문을 가지고 직접 사격 준비를 완료하였다. 때마침 커다란 굉음과 함께 축석령 고개를 돌아내려오는 전차를 발견한 결사대는 100여 미터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착하게 직접 대준사격을 실시하여 전차의 궤도에 명중시키자 육중한 쇳덩어리는 도로 중앙에 멈춰섰다. 그후 남은 포대에서는 전임 포대장 최진식 중위의 지휘하에 집중 포사격을 실시하여 결사대를 엄호하였다. 결사대는 곧이어 두 번째 포탄을 장전하고 사격을 실시하려던 순간 후속하는 적 전차의 집중사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전원 산화하고 말았으며 이 결과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시키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지연시켰다. 이 전투로 산화한 포병 김풍익 중령과 6·25 전몰 포병용사들의 숭고한 살신 호국정신을 높이 받들고 젊음을 조국에 바친 그들의 넋을 추모하고자 육군 포병장병과 고인의 친구 그리고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선배동료와 후배들은 정성을 모아 이 기념비를 세웠다.
김정호 선생 재사(해사정) 및 기념비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외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개척하기 위해 유안무 등과 중국 만주,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답사하고 국내로 돌아와 동지를 규합하였고, 1919년 3월 초 서울에서 심산 김창숙과 함께 파리장서운동을 기획하여 서울 및 지방에서 동지를 규합하였으며 해외파견대표에 선정되어 출국을 준비하던 중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인정하여 2015년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나석주의사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92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농장이 있었던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겸이포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그는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 활동과 친일파 처단 활동에 앞장서다 1920년 9월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중국에서 나석주는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과 한단군관학교를 거쳐 1924년까지 중국군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그 뒤 천진에서 의열단에 입단해 한층 적극적인 독립투쟁을 강구하던 중 1926년 6월 유림대표 김창숙을 만나 경제적 착취의 대표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은행, 식산은행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1926년 12월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한 나석주는 28일 오후 먼저 조선식산은행에 들어가 대부계 철책 너머로 폭탄 한 개를 던지고, 큰길 건너편 동양척식 주식회사 경성지점으로 달려가 총격과 함께 또 폭탄 한 개를 던졌다. 그러나 폭탄은 모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이어 나석주는 동양척식 주식회사 바로 옆의 조선철도회사로 들어가 한 차례 더 총격을 가하고 길거리로 나왔는데, 황급히 출동한 경찰대와 기마대의 추격을 받자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나석주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현재 외환은행 본점이 위치한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자리에 그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나라와 겨레위한 얼의 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77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남도 함평군
관할지청 : 전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함평 기각리 함평공원 내에 이 고장 출신 순국선열과 6·25전쟁 참전유공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나라와 겨레위한 얼의 탑’을 건립하였다. 함평군은 순국선열, 호국용사의 거룩한 얼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충혼탑건립위원회를 구성하고 1977년 12월 22일 이 탑을 세웠다. 탑 뒤에 전몰호국영렬위패봉안소가 설치되어 600여 명의 전몰용사와 반공애국투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함평 청년들은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과 맞서서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29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전라남도 나주시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나주역사는 1913년 7월 1일 호남선 개통에 따라 신축된 건물로, 1929년 10월 30일 일본인 남학생과 조선인 남학생의 편싸움을 발단으로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의 직접적인 진원지가 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알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인 학생독립운동 진원지 옛 나주역에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일깨울 수 있도록 학생독립운동의 과정과 나주지역의 식민지적 상황, 만세운동, 나주 출신 학생운동지도자 등을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나주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당시 나주역에서 나주-광주 간 기차를 이용해 통학하던 일본 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의분에 찬 한국 학생들이 대항하여 생긴 충돌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학생독립운동은 흔히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평가된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학생독립운동 진원지 ‘옛 나주역’ 옆에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일깨울 수 있도록 전남지역의 식민지적 상황과 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 등을 주제로 2008년 7월 25일 개관하였다.
나주 궁삼면 항일농민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0년
주제 : 사회운동
지역 : 전라남도 나주시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한말 궁삼면 일대 토지를 부패한 관리들이 경선궁장토로 편입하여 농민들과 분쟁이 된 것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매입하여 일본 이주민들에게 되팔거나 주민들에게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려 하자 농민들은 소작료 불납동맹을 결성하고 토지소유권 확인소송과 토지소유권 청구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조선총독부의 편파적인 판결로 모두 패소하였다. 농민들은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농민회를 조직하고, 1925년 10월 9일 토지회수운동동맹을 결성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토지회수운동을 벌이는 등 항일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나주궁삼면항일농민운동기념사업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1991년 1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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