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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60
남자현지사 생가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영양군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남자현지사 생가는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양군과 남자현의 후손들이 3년여의 조성 기간을 거쳐 1999년 11월 30일에 복원한 생가이다. 본채·추모각 등의 건물과 주차장, 남자현지사 항일순국비를 갖추었다.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지나면 본채와 부속채가 있고, 본채 뒤편에는 추모각이 있다. 남자현의 본관은 영양이고 아버지는 통정대부 정한(廷漢)이다. 1896년 남편이 의병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싸우다 죽자, 유복자를 기르면서 시부모를 모셨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 이후에는 의병으로 활동한 아버지 정한을 도와 장정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부상을 입은 투사들을 간호하는 한편 독립군의 간부를 추천했다. 1921년 지린성에서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에 주력했다.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의 리튼 경이 하얼빈에 왔을 때, 무명지를 끊어 흰 수건에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 혈서를 써서 끊어진 손가락과 동봉하여 리튼에게 보내 독립을 호소했다. 1933년 이규동(李奎東) 등과 함께 만주국 주재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의 살해를 기도하다가 2월 28일 체포되었다. 옥중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강인한 의지로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병보석으로 출옥했으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8월 22일 하얼빈의 여관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되었다.
남원 항일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2005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한말·일제강점기에 전북 남원 출신의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1919년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항일운동, 일본지역항일운동, 광복군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남원시에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2005년 10월 18일 이 탑을 세웠다.
남양주시 호국무공수훈자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2004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무공수훈자회 남양주시지회는 2004년 8월 남양주시 지금동 73-1에 남양주시 출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세계평화와 자유수호를 위해 무공을 세운 무공수훈자와 국가안전보장에 크게 이바지하여 보국훈장을 수여받은 자의 공로를 기리고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고 후세에 전하고자 호국무공수훈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남해 대간첩작전 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80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남도 남해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남해 대간첩작전간 순직하신 故이종춘 소령님과 김태식 중사님, 김진경 일병님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남강 조정환선생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75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경남 김해 출신 독립운동가인 조정환 선생의 상이다. 조정환은 호가 남강으로 김해시 강서구 녹산동 출신의 독립 운동가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일제에게 한국이 강점된 후에는 개혁자강과 실력양성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무장투쟁 단체인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고, 그 후 조병준, 변창근 등과 함께 민국독립단에 가담하여 자의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925년 9월 15일에는 서울에서 백남훈·홍성하·박승철 등과 함께 조선사정연구회를 조직하여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강 이승훈선생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64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864년에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이승훈은 가난한 서민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를 잃고 16세에 유기상의 점원이 되었다. 10여 년 동안 유기행상과 공장 경영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그는 국내 굴지의 대실업가로 성장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이 강제로 물러나면서 나라의 정세가 위태로운 시기에 이승훈은 평양에서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40대의 나이에 사회운동에 뛰어들어 강명의숙과 오산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신민회에서도 활동했으며 1910년에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승훈은 1911년에 105인 사건으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고, 1919년 3·1 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에 참가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22년에 가출옥한 이승훈은 용동에 자면회를 세우고 1천여 평의 땅을 기증해 공동경작제를 실시했다. 또한 이상재, 유진태와 함께 조선교육협회를 설립하고, 오산학교를 중심으로 교육사업을 계속했다. 그에게는 1962년에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남양주시 현충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남양주시는 1981년 남양주시 일패동 산73-8에 6·25전쟁 당시 조국과 자유 수호를 위하여 장렬히 전사한 미금시 출신 장병 83위와 남양주시 장병 144위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호국보훈의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하여 현충탑을 건립하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평택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6·25전쟁에 참가한 장병들과 전사한 37인의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국방부에서 1975년 9월 29일 이 비를 세웠다.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의 안정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남아공에서는 공군을 파견하였다. 파견된 공군은 제2전투 비행대대 255명(장교 49명, 사병 206명)으로써 1950년 11월 16일 부산 수영비행장에 도착, 11월 19일부터 미 공군과 합동으로 청천강 이북지역에 대한 출격에 참가하였다. 그후 이 비행대대는 지상군 전선이동에 따라 평양, 수원, 진해, 여의도, 횡성 등의 기지로 이동하면서 지상군에 대한 근접 항공지원, 적 후방지역 차단작전과 적 산업시설 파상작전에 참가하였으며 휴전이 되자 F-86 전투기를 미 폭격여단에 인계하고 1953년 10월에 철수하였다. 이 남아프리카공화국 군(軍)의 혁혁한 공적을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고자 참전기념비를 건립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유와 국가간의 친선은 남아공화국의 높은 이상이요, 자랑스런 유산이다. 이들이 치른 큰 희생은 영원한 격려이어라.
남강정사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1841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곳은 장태수가 순국한 집이다. 이 집은 '남강정사'라고 불리는데 지금도 옛날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장태수는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21세 때인 1861년(철종 12) 신유 식년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869년(고종6) 양산군수로 부임하자 군기를 정비하고 별포군을 길러내는 등 국방에 힘썼다. 또 병조참의, 돈녕부도정, 대사간 등 요직을 지낸 다음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때는 고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고종황제의 선위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신명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러 냈으나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그 사이 1875년엔 연로한 부친을 봉양하기 위하여 사직하고 고향인 금구에 내려와 효도에 전념하였다. 부친 사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간 그는 가선대부시정원부경에까지 올랐으나, 1910년 한일합방 후 일제가 회유책으로 보낸 은사금을 거절하고 『자죄문』을 지어 망국을 자책하는 한편,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이 임금에게 불충하고 조상에게 불효한 것이라 하며 단식하여 목숨을 끊고자 하였다. 그는 동포에게 주권의 회복을 호소하는 고결문을 남기며 우국충정을 동포에게 호소하던 중 단식을 시작한지 20여 일이 지난 11월 17일 그는 그의 생가에서 숨을 거두었다.
낭산 김준연선생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문화운동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관할지청 : 전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김준연은 1895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나 일본 오카야마(岡山) 제6고등학교(대학예과 과정), 동경제국대학 대학원, 독일 베를린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한국 최초의 해외특파원(조선일보 특파원)으로 1920년대의 소련을 시찰했고 조선일보 특파원, 논설위원, 전 조선공산당 당수,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필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신간회 조직, 제3차 공산당 사건, 일장기 말살 사건, 흥업구락부 사건, 조선어학회 사건 등을 주동하여 국내에서는 가장 격렬한 항일투쟁에 참여, 8년 동안의 감옥 생활과 9년 동안의 연금 생활을 하였다. 8·15 해방이 되자 일제 당국은 정권 인수를 제의했으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김준연은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령하였다. 낭산 김준연선생 기념관은 2012년 전남 영암군과 ‘낭산 김준연 선생 기념사업회’을 주축으로 전남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생가터에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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