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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흉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대전광역시 서구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이 곳은 미국 선교사 윌리엄 얼 쇼(William Earl Shaw, 서위렴)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인 친구들과 자라난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서위렴 2세)가 목숨을 바쳐 한국을 사랑한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그는 한국 선교사로 일하기 위해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던 중 한국 전쟁이 일어난 소식을 듣자 자기 가족들의 안위와 젊은 자신의 빛나는 미래를 뒤로하고 해군 대위로 자원 참전하였다. 인천상륙작전 시 정보장교로서 작전 성공에 기여했으며, 서울 탈환 부대를 이끌며 진격하던 중 1950년 9월 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28세 일기로 전사하였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우리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로부터는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받았으며, 2023년에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전쟁 시 군목으로 참여한 그의 아버지 윌리엄 얼 쇼(목원대학교의 전신인 '감리교대전신학원'의 창립이사이자 신약학 교수)와 함께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여기 그의 고인의 흉상을 건립하여, 그의 숭고한 희생을 널리 전하고자 합니다.
윌리엄 해밀턴쇼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은평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6.25전쟁에 참전하여 은평구 녹번리 전투 중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를 기리기 위한 조형물
유엔군 초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오산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유엔군초전기념비는 한국전쟁당시 미군제24사단 21연대 1대대의 B.C.중대 및 사단 52포병대대 AVH대로 편성된 스미스 전투부대 장병이 유엔군으로 참전하여 1950년 7월 5일 오산죽미령에서 북한국과 맞서 6시간 넘는 격전을 치렀으며 이 때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7월 5일 미군 제24단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1982년 4월 6일 경기도에 의해 재건립되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오산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견된 스미스특수임무부대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평화와 자유의 가치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 건립됨
유관순열사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02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대표적인 독립지사인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추모함
유관순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02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관할지청 : 서울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유관순은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다. 1915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교비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18년에는 고등과로 진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천안·연기·청주·진천 등지의 각 마을과 문중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 그곳에서 공주 영명학교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관옥을 만났다. 1심 공주재판소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언에서 3년 형이 확정되어 서대문감옥에서 복역 중 여러 차례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 등으로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96년 5월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하였다. 유관순 동상은 원래 1970년 남대문 앞 녹지대에 건립됐다. 하지만 지하철 공사 때문에 건립 1년 만인 1971년 이곳으로 이전됐다.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서울특별시 서초구
관할지청 : 서울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평북 정주에서 조직된 '유격백마부대'는 군번,계급도 없이 서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큰 전과를 올렸으며 그 과정에서 전사자 552위를 추모하는 충혼탑을 건립
유엔기념공원
시설 : 공원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관할지청 : 부산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전투지원국 16개국(미국, 영국, 터키, 캐나다,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남아공, 콜롬비아, 그리스, 태국,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 및 의료지원국 6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스웨덴, 독일) 6.25전쟁 참전 군인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림
유재흥장군 제승 기념지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하양초등학교 내에 영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유재흥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유재흥장군제승기념지건립추진위원회에서 1956년 3월 29일 제승기념지를 조성했다. 유재흥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대위로 임관, 조선경비대총사령부 보급관(군수국장)으로 보직돼 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여단 참모장을 거쳐 여단장과 사단장(6·2·7사단장)·제주도지구전투사령관을 거치며 지휘능력을 인정받아 장군으로 진급했다. 6·25 때 그는 7사단장·1군단 부군단장·2군단장(2번)·참모차장(3번)·3군단장으로 개전 초기부터 낙동강선 방어작전, 북진·청천강 전투, 1·4후퇴, 유엔군의 재북진, 고지쟁탈전을 거쳐 휴전 때까지 한 번도 전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전투지휘관'이었다. 국군이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구축하자 적의 주공이 지향된 동작동~대방동의 방어책임을 맡은 혼성 7사단장으로 임무를 성공리에 수행, 미군이 증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1950년 7월 1일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를 필두로 미군이 본격적으로 증원돼 한미 간에 지연전략이 채택되고, 이에 책임구역이 경부가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미군, 동쪽은 한국군이 전담하면서 산악지역에서의 작전지휘의 효율성을 위해 1군단을 창설했다. 이때 유재흥 준장은 부군단장에 보직돼 김홍일 군단장을 보좌했다. 그는 7월 중순 새로 창설된 2군단장에 보직돼 낙동강 방어선에서 1·6사단을 지휘해 다부동·영천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북진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 공로로 그는 미국 무공훈장을 수여받고 소장으로 진급했다. 북진 작전 시 그는 2군단장으로 3개 사단(6·7·8사단)을 지휘, 미군보다 먼저 압록강에 진출했다. 그렇지만 운명의 신은 그에게 행운만을 주지 않았다. 중공군이 1·2차 공세에서 화력이 빈약한 2군단을 집중 타격해 그 여파로 군단이 해체되자 참모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1·4후퇴 직후 다시 중동부 전선을 맡은 3군단장에 보직돼 유엔군의 재진격 시 크게 활약하던 중 중공군이 4월 공세의 실패(서울 점령)를 만회하고 한국군에게 섬멸적 타격을 줄 목적으로 3군단(3사단·9사단)에 주력을 지향하고 기습공격했다. 이때 군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밴 플리트 장군에 의해 해체됐다. 이후 그는 중장(31세)에 진급했고, 1952년 7월 백선엽 장군(2군단장)이 총장으로 영전되자, 다시 군단장에 보직돼 금성돌출부 형성에 기여했다. 1953년 초 군단장을 정일권 중장에게 물려준 그는 참모차장에 복귀해 휴전을 맞이했다.
유치곤장군 호국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에 6·25전쟁 중에 수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유치곤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추진위원회에서 2005년 6월 15일 호국기념관을 세웠다. 유치곤장군은 1927년 달성군 유가면 쌍계리에서 태어나 6·25전쟁 당시 공군 전투조종사로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운 전쟁영웅이다. 그는 1951년 10월 11일 F-51전투기 조정사로 강릉공군기지에서 첫 출격을 시작으로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공을 세움으로써 6·25 전쟁 중에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 각 3회를 비롯하여 모두 12회에 달하는 각종 최고 훈장을 수훈함으로써 전투조종사로서 최고의 영예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우리 공군사에 유일하게 203회 출격 기록을 남겼다. 2000년 1월 전쟁기념사업회에서는 이와 같은 공로를 기리기 위해 호국인물로 전투 조종사인 유치곤 공군준장을 선정하였으며, 전쟁기념관에서는 그의 흉상이 역대 위인들과 함께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이렇듯 그는 전투비행 2천7백여 시간의 신화적인 기록을 남기면서 공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군이며, 그 전공을 그려 만든 영화 '빨간 마후라'는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후대에 길이 알릴 수 있는 역사의 교육 현장이 되길 바라는 뜻에서 달성군지역민과 공군 지원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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