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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육탄 이희복용사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군포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한얼공원 내에 6·25전쟁 전쟁시 활약한 육탄10용사 중 군포시 출신 이희복 상사를 추모하기 위해 군포시 재향군인회에서 2009년 6월 19일 동상을 건립했다. 이희복 일등상사는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에서 태어나 조선경비대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1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11연대는 1949년 1월 12일 문산으로 이동하여 38도선경비작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당시 연대는 제2대대를 38도선 전면인 청단, 연안, 배천, 송악산, 고랑포 일대에 병력을 분산배치하여 진지구축과 경비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1대대는 연대후방에서 신병교육을 전담토록 하였으며, 제3대대는 인접 제15연대에 배속시켜 파견중에 있었다. 그리고 연대본부에서는 하사관교육대 1개 중대 병력이 교육훈련중에 있었다. 제2대대가 38도선 전면의 불리한 지형과 적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점차 경비임무를 강화하자, 북한군은 이를 저지하고 계속적인 38도선 주도권 장악을 목적으로, 1949년 4월 25일 남천점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 제1사단 제3연대의 1개 대대 약 1천명을 송악산 후방의 냉정리에 집결시켜 공격준비를 완료한 후, 5월 3일 미명을 기해 기습남침하여 송악산 일대의 292고지, UN고지, 155고지 및 비둘기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에 급보를 접한 제11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이를 즉시 보고함과 동시에 제1대대 예하 제3, 제4중대를 급히 제2대대에 예속시키는 한편, 연안 방면으로 행군훈련을 나간 연대 하사관교육대를 개성으로 긴급 복귀시켜 5월 4일 미명을 기해 반격작전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공격지역이 노출된 급경사지역으로 너무나도 불리한 지형이며, 10개 소의 토치카에서 중화기가 불을 뿜고 있어, 공격부대는 7부 능선에서 더이상 진출하지 못하고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연대장은 적의 토치카를 파괴하고 아군진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특공대를 선발 결사적인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하고, 자원한 하사관 교육대의 특공대장 서부덕 소위(당시 계급 이등상사)와 이희복 일등상사(당시 계급 하사) 등 9명의 특공대를 편성하였다. 이리하여 특공용사 9명의 육탄공격조는 81mm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장치하여 만든 육탄공격용 포탄을 휴대하고 12:00를 기해 각자 목표지점을 향해 출발하였으며, 동시에 후방에서는 57mm 대전차포로 특공대의 전진을 엄호하였다. 특공대는 적의 집중되는 기관총사격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까지 포복으로 전진하여, 박격포탄을 안고 각자 맡은 적의 기관총진지에 신속히 돌입하여 자폭함으로써 적의 토치카를 폭파하였으며, 이에 따라서 아군 공격부대는 14:00경 LN고지를 무난히 탈환하였다. 또한 특공대를 지원했던 박창근 하사가 292고지의 적 토치카를 수류탄으로 단독 공격하여 분쇄함에 따라, 사기충천한 제11연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적을 공격하여 292고지 등을 탈환함으로써 송악산지구의 38도선 아군진지를 모두 회복시켰다. 이희복 일등상사는 육탄10용사의 한 사람으로 제1차 송악산지구전투에서 1949년 5월 4일 장렬하게 산화하였으며, 그의 고귀한 희생으로 송악산지구의 주요고지를 모두 탈환하여 국군의 위용을 과시함은 물론 개성지역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하사에서 일등상사로 추서하고 1952년 10월 15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육군대령 강병식 추모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88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강병식 대령은 1988년 5월 4일, 지뢰 매설 작업을 지휘하다 지뢰가 폭발하려 하자 부하들을 급히 엎드리게 하고 지뢰 위에 본인의 몸을 던져 휘하 장병 14명의 목숨을 구하고 순직하였다.
육군 소령 심일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원주시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심일소령의 부친인 고(故) 청파 심기연 선생께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안식처를 마련하기 위해 1964년 사유임야 1만평과 건립기금기탁으로 현충탑을 건립하게 되었으며, 백척간두에 풍전등화 같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용전분투하다 전사한 심일 소령의 넋을 기리고자 추모 동상을 이곳에 세우게 되었다.
육탄 10용사 충용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49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기도 파주시
관할지청 : 경기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육탄10용사는 6.25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5월 4일, 북한군의 기습으로 빼앗긴 개성 송악산 일대를 탈환하기 위해 박격포탄을 가슴에 낮고 적 벙커에 뛰어들어 장렬히 산화한 장병들이다. 당시 북한군의 토치카를 파괴해야만 고지를 탈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계획을 세웠으나 위험천만한 작전에 공격대원을 지정할 수 없어 지원자를 받았는데, 서부덕 이등상사, 박창근 하사, 박평서 상등병, 황금재 상등병, 오제룡 상등병, 윤옥춘 상등병, 김종해 상등병, 이희복 상등병, 양용순 상등병, 윤승원 상등병 10명의 용사들이 지원하였다. 토치카 파괴를 위해 박창근 하사가 수류탄을 안고 돌진하였으나 적진으로 가는 도중 집중사격을 받아 전사하자, 나머지 용사들은 각자 정해진 목표물을 향해 300m까지 포복,총탄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끝내 자신들의 몸을 던져 임무를 완수하였다. 이들의 희생으로 빼앗겼던 292고지, UN고지, 155고지, 비둘기고지 모두를 탈환할 수 있었다. 정부에서는 10용사 모두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으며, 서부덕 이등상사(현재는 중사)는 소위로, 박창근 이등중사와 나머지는 모두 육군상사로 특진되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 나서 목숨을 바친 육탄 10용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5월 통일공원에서 호국정신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이들의 정신을 잊지 말고 이어나가자는 의미에서 육군에서는 조국 수호의가가 투철한 군인들을 선발해 '육탄10용사상'을 수여하고 있다.
육군 공병5기 6·25 참전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6.25전쟁 당시 육군 제301공병교육대(육군공병학교 임시 개편)에 자진 입대하여 전쟁에 참여한 174명의 젊은 장교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윤동주 시(詩) 정원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44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전라남도 광양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망덕포구를 거점으로 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 가옥과 연계한 테마공원을 윤동주 시집에 수록된 시 31편을 시비로 새겨 감성적 이색적인 공간으로 재창조하여 윤동주의 저항정신을 추모하고자 함
윤봉길 의사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08년
주제 : 의열투쟁
지역 : 대전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08년 충남 예산 출신으로 문맹퇴치와 농촌개혁운동을 전개하다 1931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방안을 모색하였고 1932. 4. 29. 중국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 의사에 대한 숭앙시모가 추모의 뜻을 높이고 민족의 얼을 되새기고자 동상을 건립
윤동주 문학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년
주제 : 문화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2012년 7월 25일에 개관하였으며 윤동주(尹東柱) 시인을 기념하는 문학관이다. 대지는 90㎡ 이며 3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사진자료와 친필원고, 시집, 당시에 발간된 문학잡지 등을 전시하며, 그리고 윤동주 문학관의 가장 독특한 특징인 시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영상실이 있는데 이 영상실은 물탱크를 재활용하여 만들었다. 문학관에서 주최하는 시낭송회와 음악회, 백일장 등이 열리며, 문학관 뒷편 인왕산 자락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이름의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시절 이곳에서 가까운 누상동 9번지(서울 종로구 옥인길 57) 소설가 김송(金松.1909~1988)의 집에서 후배 정병욱(1922~1982, 시인)과 함께 하숙생으로 살았으며 당시 그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의 작품을 남겼다. 윤동주문학관 건물의 특징은 청운동에 버려진 물탱크와 수도가압장 시설을 재건축하여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는데 뛰어난 공간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물탱크 내부를 영상실로 만들었는데 외부에서 한줄기의 빛이 스며들게 설계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탱크의 윗부분은 정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뒤쪽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계단으로 연결된다. 2013년 1월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건축문화잡지인 월간 스페이스(Space)가 선정한 한국의 현대건축 'Best 20' 중에서 18위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大賞)에 선정되었다.
윤옥춘 전공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대전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대전시 중구 대사동 보문산 야외음악당 내에 대전시 출신의 육탄10용사 중 한 사람인 윤옥춘 일등상사를 추모하기 위해 대전시에서 1971년 5월 10일 이 비를 세웠다. 윤옥춘 일등상사는 충청남도 대전시(大田市) 문화동(文化洞)에서 태어나 조선경비대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1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11연대는 1949년 1월 12일 문산으로 이동하여 38도선경비작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당시 연대는 제2대대를 38도선 전면인 청단, 연안, 배천, 송악산, 고랑포 일대에 병력을 분산배치하여 진지구축과 경비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1대대는 연대후방에서 신병교육을 전담토록 하였으며, 제3대대는 인접 제15연대에 배속시켜 파견중에 있었다. 그리고 연대본부에서는 하사관교육대 1개 중대 병력이 교육훈련중에 있었다. 제2대대가 38도선 전면의 불리한 지형과 적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점차 경비임무를 강화하자, 북한군은 이를 저지하고 계속적인 38도선 주도권 장악을 목적으로, 1949년 4월 25일 남천점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 제1사단 제3연대의 1개 대대 약 1천명을 송악산 후방의 냉정리에 집결시켜 공격준비를 완료한 후, 5월 3일 미명을 기해 기습남침하여 송악산 일대의 292고지, UN고지, 155고지 및 비둘기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에 급보를 접한 제11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이를 즉시 보고함과 동시에 제1대대 예하 제3, 제4중대를 급히 제2대대에 예속시키는 한편, 연안 방면으로 행군훈련을 나간 연대 하사관교육대를 개성으로 긴급 복귀시켜 5월 4일 미명을 기해 반격작전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공격지역이 노출된 급경사지역으로 너무나도 불리한 지형이며, 10개 소의 토치카에서 중화기가 불을 뿜고 있어, 공격부대는 7부 능선에서 더이상 진출하지 못하고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연대장은 적의 토치카를 파괴하고 아군진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특공대를 선발 결사적인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하고, 자원한 하사관 교육대의 특공대장 서부덕 소위(당시 계급 이등상사)와 이희복 일등상사(당시 계급 하사) 등 9명의 특공대를 편성하였다. 이리하여 특공용사 9명의 육탄공격조는 81mm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장치하여 만든 육탄공격용 포탄을 휴대하고 12:00를 기해 각자 목표지점을 향해 출발하였으며, 동시에 후방에서는 57mm 대전차포로 특공대의 전진을 엄호하였다. 특공대는 적의 집중되는 기관총사격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까지 포복으로 전진하여, 박격포탄을 안고 각자 맡은 적의 기관총진지에 신속히 돌입하여 자폭함으로써 적의 토치카를 폭파하였으며, 이에 따라서 아군 공격부대는 14:00경 LN고지를 무난히 탈환하였다. 또한 특공대를 지원했던 박창근 하사가 292고지의 적 토치카를 수류탄으로 단독 공격하여 분쇄함에 따라, 사기충천한 제11연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적을 공격하여 292고지 등을 탈환함으로써 송악산지구의 38도선 아군진지를 모두 회복시켰다. 윤옥춘 일등상사는 육탄10용사의 한 사람으로 제1차 송악산지구전투에서 1949년 5월 4일 장렬하게 산화하였으며, 그의 고귀한 희생으로 송악산지구의 주요고지를 모두 탈환하여 국군의 위용을 과시함은 물론 개성지역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52년 10월 15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윤영하 소령 흉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2002년
주제 : 기타
지역 : 인천광역시 연수구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송도고등학교 내에 이 학교 출신으로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군과 교전하다 전사한 윤영하 소령을 추모하기 위해 송도고등학교에서 이 비를 세웠다. 1973년 11월 24일 경기도 인천시에서 해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 윤두호와 어머니 황덕희 사이에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전역 후 해운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 3년 동안 영국 런던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귀국한 뒤 송도고등학교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해사 50기로 임관하였다. 1996년 해군 계봉함 갑판사관을 시작으로, 1998년 해군 원산함 정훈보좌관으로, 1999년에는 해군 초계함 제천함 작전관으로 근무를 하다가, 2001년 1월 참수리급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정장이 되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를 기념함과 동시에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윤영하함이라는 함명이 그를 따서 지어졌다. 2002년 정부는 그의 희생에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故 윤영하 소령(1973~2002) 2002년 6워 29일 그 날의 아침과 우리 영웅들의 숨 가빴던 핏빛 역사를 짙푸른 바다위 포효하던 함포와 생과 사를 건너뛴 조국 향한 뜨거운 충정을 서해는 알고 있다, 그 날을 기억한다. 분단의 조국, 영핼ㄹ 침범한 적과의 전투와 검푸른 바다 위에 장렬히 산화한 그들 서해의 영웅이 되어버린 그 이름과 대한의 가슴속에 영원토록 새겨질 아들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날을 기억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다에 맹세한 대한의 사나이 뼈와 살을 내려놓고 피와 땀을 흩뿌린 윤영하 선배님을 기억한다. - 송도고등학교 2학년 안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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