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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년 6월 25일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자 일본에 있던 재일교포의 자녀 및 유학생 1,000여명은 주일 대표부에 조국 수호를 위하여 참전하겠다는 뜻을 전하였지만, 주일대표부와 미국 극동사령부는 이들은 병역의무가 없어 참전할 수 없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조국을 위해 꼭 참전하겠다는 탄원서를 내는 등 적극적인 교섭 끝에 642명이 미8군에 편입되어 참전할 수 있었다. 이들은 불과 1~2주간의 짧은 훈련을 마치고, 1950년 9월 중신 176명이 투입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한국에 들어왔다. 재일학도의용군은 미국과 국군부대에 수십 명 단위로 흩어져 인천상륙작전, 평양입성, 압록강 해산진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에 참여했다. 이들 642명 중 52명은 전사했고 83명은 행방불명 처리되었으며, 265명은 일본에 귀국하였으나 242명은 일본이 무단출국자로 규정해 입국을 거부하여 조국에 남았다. 1959년 6월 28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52명의 유골을 안치할 충혼탑과 납골탑이 일본 동경에 건립되었고, 1956년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 조국의 땅인 월미도에 기념비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1976년에 와서 서울 현충원에 재일학도의용군 위령비가 건립되었는데, 재일교표들의 모금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1979년 10월 1일 바다를 건너 달려온 재일학도들의 장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 후세 젊은이들에게 조국애의 표본으로 남기기 위해 수봉공원에 4백여 평의 대지를 마련하여 높이 8m의 석재 조형물과 청동군상으로 된 ‘재일학도의용군 참전비’를 건립하였다. 제막식에는 최규하 국무총리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고, 참전비 문구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휘호가 새겨졌다. 1982년 11월 1일 참전비 앞에 다시 재일학도의용군 명비와 연혁비가 세워져 제막식이 열렸다. 현재 매년 9월 국내외에 거주하는 동지회 회원들이 기념비 앞에서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2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청양리에 저격능선전투를 기념하고 전사한 미군과 한국군을 추모하기 위해 육군 제5군단에서 1958년 7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저격능선전투는 1952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북한군과 중공군이 대대적인 진지전을 전개하자 국군과 유엔군측에서도 전투력의 위세를 보이기 위해 국군 제2사단으로 하여금 김화 북방의 저격능선을 탈취하도록 한 공격전투다. 이 전투에서 국군 제2사단은 저격능선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5군을 공격하여 초전에 목표를 점령한 후 중공군의 역습을 저지하기 위하여 42일 동안이나 그 고지에서 버텼다. 이 기간중에 중공군 제15군은 2개 연대 병력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손실을 입게 되었고, 국군 제2사단은 1개 연대 병력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끈질기게 대결한 이 전투에서 국군은 끝까지 저격능선을 확보하였으며 중공군은 저격능선 전방에서 대치한 채 공격을 중지하고 수세전으로 전환하였다.
적성리전투 전승비·순국 위령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문경시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 적성리 전투 전승 기념 및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문경시에서 1971년 4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 중인 1951년 1월 13일에서 16일까지 4일간 동로면 적성지역에서 미군 제10군단에 배속되었던 한국군 대대(대대장 배동 소령)는 북한군 제10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배동 소령 대대는 2, 000여 명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크게 전승을 거두었다. 문경군에서는 이 전투 참전용사들의 전승기념과 6·25를 전후하여 북한군과 교전중 전사한 향토출신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순국 및 전승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동로면 노은리에 2개의 비를 각각 건립하였다. 그후 1980년 10월 당시의 격전지였던 동로면 적성리 산4번지 향토예비군 교육장 옆으로 이전 건립하게 되었다. 순국위령비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조국수호와 자유를 위하여 이 고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니 용전의 부대는 특별공격대로서(미 제10군단 비속 대대장 비동 소령, 중대장 손장말 대위, 동 허태운 대위, 소대장 정영화 소위, 이상헌 소위 등) 1951년 정월 1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격파하여 확인 사살 1, 057명, 적 부상 900명, 무기노획 다수의 전과를 올렸도다.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용감히 싸운 이들 부대전원의 공훈과 적성리 주민의 일치단결된 애국충정은 이 고장 강산과 더불어 청사에 길이 빛나리. 전승비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해방이후 우리 겨레와 이 고장을 수호하다가 많은 청년이 북한군들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 또는 순국하였으니 특히 6·25를 전후한 어지러운 시기에 이 고장에서 벌어진 전투중 1951년 1월 14일부터 16일까지의 통로로 남하를 기도하던 적 사단 규모의 대병력과 대적하여 우리 젊은이들은 군과 경찰을 도와 일기당천의 용맹으로 크게 용전분투하여 대성과를 거두었으니 이 어찌 장하지 않으리. 황정산을 전투장으로 이 고장을 간성으로 지켜주시다가 순국한 거룩한 넋이여 고이 잠드시라.
전라남도항일독립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세기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남도 무안군
관할지청 : 전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말,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전라남도 출신의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고 그 얼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전몰군경 충혼비(온정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7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울진군 소태리에 1957년 6·25전쟁 기간에 전사한 온정면 출신 전몰용사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재향군인회 온전면 분회에서는 이곳 출신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1957년 1월 1일 충혼비를 세웠다. 6·25전쟁 기간 온정면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전사경찰추모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인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 6. 25 북한 공산군이 불법 남침하여 전면 전쟁을 일으켰으나 한국군의 반격으로 3개월 만에 38선 이북으로 패주함에 따라 인제경찰서장 경감 최동규 외 56명이 수복된 인제지역의 치안업무를 수행하고자 10.19. 11:30 관대리(38대교에서 인제읍 방향 1.5㎞ 소양강내)를 지나던 중 북한 공산군의 기습을 받아 양춘길 경사(당시 계급 순경) 등 8명이 전사하였다.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다 산화하신 순국선열들의 명복을 빌고 님들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며 영령들의 넋을 길이 기리고자 한다.
전등사 - 강화의병전투지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인천광역시 강화군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등사는 이동휘와 이능권의 국권회복 운동을 전개했던 장소이다. 구한국 지방 주둔 군대의 하나인 강화진위대 대장 출신 이동휘는 1907년 7월 김동수·허성경 등의 기독교인을 비롯하여 해산군인 400여 명을 모아 합성친목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반일집회를 열어 일반 군중을 고무시켰던 곳이다. 또 8월 2일에는 진위대원인 정기우, 지홍윤, 유명규, 김동수 등이 이곳에서 비밀리에 국권회복을 협의를 했다. 이능권은 국정리 출신으로 서울 시위대 장교였으며 군대 해산 후 강화도에 낙향한 후 주민들을 모아 대동창의단을 조직하였다. 친일파 밀정 처단, 강화 전역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던 중 1908년 10월 하순 용산 지역에서 출병한 일본군과 정족산 전등사에서 일주일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1908년 의병의 항전이 이어지자 일본군은 같은 해 10월 용산 주둔 일본군 6사단 예하의 13연대 70여 명의 정규 병력을 강화로 투입하였다. 10월 30일부터 31일 양일 간 일본군의 공세가 거셌지만 전등사의 이능권(李能權)부대는 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격퇴하여 승리하였다.
전북지역 독립운동 추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일제에 찬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신 전북지역 애국선열들의 거룩한 얼을 추모하고 후세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르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4년 7월 21일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234-16(어린이회관동편)에 독립운동추념탑이 건립되었다. 현재 추념탑 부지에 전북 출신 독립운동가현창비와 탑명비, 헌시비, 건립취지문비, 안중근의사 휘호비, 건립기비 등 부속시설과 함께 추념탑 주변을 공원화하여 청소년들에게는 정신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후손들에게는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역사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주 3·1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19 기미년 당시 전주지역 3·1독립운동을 주도한 기독교 교인 및 학생 일반인들의 공훈을 기리고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2000년 전주 기독교의 요람인 신흥고등학교 내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전주 3·1독립운동은 장날인 당시 3월 13일에 기독교와 천도교 교인 및 인근 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돼 남문시장에서 시작됐다. 이날 정오 부근 남문의 인경 소리를 신호로 평화동 쪽에서 신흥학교 학생들과 교인들이 장터로 몰려와 시장 안에 숨어있던 기전여학교 학생들과 합세, 현재 매곡교 부근 전주천변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날 일본 헌병과 경찰의 해산작전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학생 등 74명이 체포됐다.
전몰군경 충혼비(평해읍)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수호하다 장렬히 산화한 평해지역 출신 전몰군경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1955년 주민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건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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