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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전공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8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화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80년 3월 27일 보병제39,50연대 합동수색조는 비무장지대내 442고지를 수색 중 은거중이던 무장공비의 사격을 받고 즉각 응사,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적 사살1명 AK소정 2정을 포함한 281점을 노획하였다. 이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고 김윤길 하사의 명복을 빌며 승리부대 용사에게 길이 그 훈공을 전하고자 여기에 전공비를 세워 이를 기념한다. 1980년 8월 15일
전공비(화천군 화천발전소)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1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화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 전공비는 1951년 4월부터 2개월간 펼쳐진 북한군 120만명의 춘계대공세기간 중 화천발전소를 사수하기 위해 육군제6사단 장병들이 1951.5.30. 발전소 입구의 적 퇴로를 끊고 용전분투하여 적6만5천명을 격멸하고 연대장 1명을 포함한 많은 포로를 생포하므로써 발전소를 탈환한 대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1954년 11월 1일 화천발전소 직원들이 건립하였다.
전사경찰 위령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인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 기습 공격을 받아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인제경찰서 8명의 경찰관의 명복을 빌고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고자 1992년 6월 18일 인제군 및 인제경찰서에서 건립하였다.
전몰군경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삼척시
관할지청 : 강원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6·25전쟁 중 조국을 위하여 산화한 삼척시 도계읍 출신 젊은 군경 187명의 영령에 대한 명복을 빌고 조국의 번영과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도계청년회가 주관이 되어 건립
전영상선생 기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85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라북도 진안(鎭安) 사람이다. 1919년 4월 6일 김구영(金龜泳)·황해수(黃海水)·오기열(吳基烈) 등과 함께 마령면 평지리(馬靈面平地里)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같은 마을 이성녀(李姓女)의 집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독려하는 격문 3통을 작성하여 게시판에 붙이고, 수백명의 시위군중을 인솔하여 그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체포되어, 이해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주 3·1운동 발상지 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주 남밖장터 3·1독립운동 발생지 표지석. 3·1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가운데, 전주 신흥학교 학생들과 천도교 조직원, 그리고 기독교 학생들은 만세시위 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13일 남밖 장날을 기하여 채소가마니로 가장한 태극기 포장을 남문 장터까지 무사히 운반하였다. 시장 입구인 완산동과 천주교 성당 건너편에서 모여드는 군중들에게 준비한 태극기를 배부하고 12시 30분 경 남밖장터 부근에서 시위를 하였다. 이어 제2보통학교 교정 부근에서 만세시위를 하였다. 2000년 1월 1일 전북인권선교협의회에서는 전주지역 학생과 주민들의 항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3·1독립운동이 시작된 매곡교 부근에 표지석을 세웠다.
전일봉선생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96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전북 무주(茂朱)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무주군 무주읍(茂朱邑) 장날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 무주에 독립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진 것은 인근의 다른 지역에 비해 늦은 3월 7일경이었다. 이에 이곳 인사들은 다른 지방 인사들과 접촉하거나, 군민들간의 연락을 통해 만세운동을 준비해 나갔다. 이때 전일봉은 인근의 기독교도들과 접촉하면서 만세시위를 구체적으로 계획해 갔으며, 동지들을 규합하여 4월 1일 무주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일로 정하는 한편, 읍내보통학교 학생들과 뜻을 같이하여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었다. 거사 일인 4월 1일 오후 2시경, 40∼50여 명이 먼저 시장 중앙에 태극기를 세우고 집합한 다음, 전일봉이 연설을 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주위의 장꾼들과 보통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내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헌병 분견소의 무장 헌병대가 출동하여 이들 시위군중을 해산시켜 버렸다. 이때 전일봉과 보통학교 학생 3명이 붙잡혔으나, 그날 밤 읍내 주위 산상에서 청년 및 보통학교 학생들이 횃불을 들고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전일봉은 이 일로 이해 4월 11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몰학도 충혼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학도의용군은 한국전쟁 당시 포항지역 전투에 출전, 공산군과 싸워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1950년 8월 11일 새벽 김춘식 외 학도의용군들이 장렬히 전사하는 등 희생도 많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포항지역 전투에 참전한 전사자들의 위훈을 길이 남기고 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고자 이 탑을 건립하였습니다.
전몰군경 충혼비(매화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울진군 매화리에 1961년 6·25전쟁 기간에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전몰군경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비’를 건립하였다. 재향군인회 원남면 분회는 남도선, 임관식, 최탁, 김길홍 등 이곳 출신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그들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1961년 6월 1일 준공하였다. 6·25전쟁 기간 원남면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원남면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이들의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전몰학도병 추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경주시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북 경주시 황오동 경주중·고등학교 교정에 형주중·고등학교출신 학도병으로 산화한 학도병을 추모하기 위해 수봉교육재단에서 1954년 11월 5일 이 비를 세웠다. 1950년 6월 25일 뜻하지 않은 공산 침략을 받게 되자 젊은 학도들은 용약 전선으로 뛰어나가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웠다. 그들 가운데는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한 사람들도 많았으나 그들이 나라를 위하고 겨레를 사랑하는 정신은 비할 바 없는 고귀한 일이었다. 이땅에 전운이 걷히지 않고 그들의 의를 숭상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전장에서 돌아온 학도병들은 그들 순국한 동지들을 그리며 그들 영령을 추모하는 유적을 남기기 위해 재단과 종친회 그리고 동창회 및 학도호국단 등의 힘을 모아 모교의 뜰에 작은 비를 다듬어 세웠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족을 반역한 붉은 이리떼의 남침으로 바람 앞에 등불이 된 조국을 구하러 펜 대신 총을 들고 초연탄우속을 치닫던 경중학우들. 자유와 평화와 통일 위해 순결한 피를 뿌리며 화랑의 기개로 목숨 불태운 그 젊음 그 열정 오! 고귀한 충혼이여. 나라와 겨레를 건져 놓고 그대들은 어느 기슭에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혹은 무덤 하나 없이 아직도 구천을 헤매는 무명영령들 하늘은 푸르러 저렇듯 무한한데 역사의 가시밭길 굽이굽이를 헤쳐온 지 어느덧 서른네 해. 아! 살아남은 자가 오히려 할말이 없구나. 여기 불사조로 온 그대들의 무기보다 강한 양심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게 하는 가교를 우리 서로 얼싸앉게 하라. 그리고 거룩한 그대들의 뜻과 이름같이 여기 빛나리. 자유 평화 정의와 함께 길이 여기 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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