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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광양시 참전유공자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2005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남도 광양시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광양시 참전유공자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는 2005년 3월 광양시 광양읍 목성리 유당공원 내에 6·25 및 베트남전에 참전한 광양지역 출신 참전유공자 1, 500여 명의 공훈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후손들로 하여금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자 참전유공자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29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한 성진회는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비밀결사다. 1926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인 왕재일과 장재성, 광주농업학교 학생인 박인생 등은 식민지 교육을 반대하고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성진회를 결성했다. 1929년 11월 3일 시작된 1차 광주학생운동이 끝난 후 일본경찰은 광주고보생 48명, 광주중학생 8명, 광주농교생 11명, 광주사범생 5명등 총 72명을 검거했다. 그 중 고보생 39명, 농교생 1명을 형무소에 가두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보안법위반 따위의 죄명으로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2차 광주학생운동을 전개했으며 광주농교생 또한 '철창에서 신음하는 교우를 구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하다가 광주고보 앞에서 강제 해산됐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은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가하여 구속되고 고문당한 광주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동창회에서 성금을 모아 1959년 6월 10일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옛 교정에 세웠는데 1974년 9월 30일 현 교지로 학교가 이전함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 건립하였다.
광주 3·1독립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10년 3월 10일 광주시 일대에서 천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을 기리기 위하여 광주광역시가 건립한 기념탑이다. 당일 오후 2시 양림동 쪽에서 기독교인과 수피아,숭일학교생들이 광주천을 따라 양동시장을 향하여 내려오고 일반시민들은 서문통을 따라 광주천으로 가서 합세하였다. 또한 농업학교 학생과 시민들은 북문통을 거쳐 광주시를 누비니 참가 인원이 천여명에 달했다. 이 날 주동자인 김철, 서정희를 비롯하여 100여 명을 검거되었다. 김철, 서정희, 김강 등 주동인물 30여 명이 옥고를 치렀고, 송광춘은 옥고 중 사망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29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광주지역에는 광주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인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과 광주농업학교생들이 1926년 11월 3일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목표로 성진회(醒進會)라는 비밀학생 독서회를 중심으로 독립을 이루기 위한 실천 방법을 상의하고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출발한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했을 때 열차에서 내린 일본인 남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했다. 이에 여학생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가 항의하면서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한 데 이어 광주농교, 광주사범 학생과 합류하여 가두시위를 감행했다. 항쟁에 놀란 일제는 휴교령을 내려 일시 잠잠해졌으나, 등교가 시작되면서 학생들이 또다시 대규모 시위를 감행하여 일제의 탄압과 불공평한 처사를 비난하고 구속된 학생의 석방을 요구했다. 시위운동은 많은 학생과 사회단체 간부들이 구속됨에 따라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광주고보 학생들은 1930년 1월 9일 백지동맹을 일으켜 다시 저항의 불길을 올렸다. 이로 인해 17명이 퇴학당했다. 1월 16일 광주고보에서는 제3차 시위를 계획하다 탄로나 48명이 퇴학당했다. 이와같이 하여 2, 3, 4학년 재적 460명 중 졸업 학생 수는 160명에 불과했다. 광주에서의 학생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나가 이듬해 초까지 전국 194개교에서 5천400여 명의 학생이 참가, 3ㆍ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 운동으로 발전했다. 광주고보는 광주제일고등학교가 되었는데 교내에 당시의 학생운동을 추념하기 위하여 1954년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건립하였다.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11월 3일은 1953년 ‘학생의 날’로 제정되었다가 유신정권 때인 1974년 일시 폐지됐다가 1984년 부활한 후 2006년 11월 국가기념일인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정되었다.
광주 3.1만세운동 기념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광주 3·1만세운동에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다 일본경찰에 끌려가 옥고를 치른 광주수피아여학교 출신 23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수피아여중고총동창회가 광주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1995년 1월 1일 건립했다. 동상 좌대에는 박순애, 이태옥, 김양순, 윤혈녀, 김덕순, 조옥희, 이금봉, 하영자, 강화선, 이라혈, 최수향, 김만순, 홍순해 등 23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으며, 옆면은 "역사의 별이 되어"라는 추모시가 있다.
광주·전남 순국학생 위령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광주·전남 순국학도병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는 1989년 1월 광주 북구 운암동 산42-3(중외공원 내) 광주·전남 출신 6·25참전 학도병 122명의 우국충정과 애국정신을 후세에 남기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순국학생위령탑을 건립하였다. 이 위령탑에서 매년 6월 광주·전남 호국학도병 출신 동지회 주최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광복단 결사대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20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충청남도 계룡시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광복단 결사대 기념탑은 1920년 한훈에 의해 결성된 광복단 결사대 발원지인 계룡산 신도안에 충청도의 애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충남 청양 출신의 한훈은 1889년 2월 27일 태어나 1906년 홍주의병이 일어났을 때 17세의 나이로 참여하였다. 선생은 홍주의병 가운데 이용규(李容珪) 휘하에서 군사를 모집하는 소모장으로서 부여․노성․연산․공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그해 5월 30일 홍주성이 일본군에 점령되어 홍주의병이 실패한 후 선생은 신도안에서 은거하면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나철, 윤이병, 기산도, 이상학 등과 함께 오적 처단 계획을 세웠으나 나철 등이 일경에게 체포됨으로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홍주 의진 참여자들과 전국의 유림을 연결하여 독립운동을 꽤했으며, 1913년 박상진, 채기중 등 경북지역 지사들과 광복단 및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집과 만주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해 활동했다. 1916년 보성의 양재성(梁在誠)과 벌교의 서도현(徐道賢)을 처단하였고, 서도현 당질인 서인선을 납치하여 1만원의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조성(鳥城) 헌병분대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 단원의 경북 칠곡의 부호 장승원과 충남 온양의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 사건을 계기로 대한광복회 조직이 드러나자 체포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한훈은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을 만나 광복단 결사대 조직을 협의하고 국내로 잠입했다. 귀국한 한훈은 독립군 모집과 일제 요인 처단을 목적으로 광복단결사대를 조직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암살단을 조직하여 조선 총독을 비롯한 일제 요인과 친일파 처단을 위해 활동을 시작한 대한광복회 동지 김상옥(金相玉)을 만났다. 한훈과 김상옥은 연합하여 첫 거사로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이 내한했을 때 환영 나온 조선총독 및 정무총감 등을 처단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미국의원단이 남대문역에 도착했을 때 암살단취지서 및 통고문․경고문을 환영군중들에게 살포하고 자동차에 폭탄을 싣고 가서 총독 이하 일본관리들을 처단하는 한편, 총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관공서와 일본경찰서 등을 폭파한다는 세부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미국위원단이 도착하기 하루 전 일제경찰의 예비검속이 이루어지면서 김상옥의 집에 무기와 탄환을 전달하러 갔다가 김상옥은 탈출했으나, 한훈과 광복단 결사대원, 암살단원들이 체포됨에 따라 거사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한훈은 8년 징역형을 받았으나, 이후 대한광복회 요원으로 서도현 등을 처단한 것이 추가로 확인되어 5년 형이 추가되었다. 한훈은 1929년 형집행 정지로 풀려나 충남 계룡산 신도안에 은거하면서 학병 거부자와 탈출병 등을 은신(隱身)시키면서 이들에게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광복단을 재건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단결과 민족교육과 산업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다 6ㆍ25전쟁 중 북한군에 납치되어 피살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광복군추모조형물
시설 : 조형물
사건 연도 : -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서울특별시 강북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중국 각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 순국한 애국선열 17위의 합동묘소로 1967년 광복군동지회에서 조성 후 1985년 국가보훈처에서 단장하였고 2017년 강북구청에서 이 추모조형물을 건립하였다. 현재 묘소는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되어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원에 준하는 예우로 관리하고 있다. 김성률 : 1943년 9월 산서성 능천 전투에서 순국 김순근 : 1945년 초모공작 중 체포되어 자결 순국 김운백 : 1943년 9월 태행산 전투에서 순국 김유신 : 1943년 태행산 전투에서 순국 김찬원 : 1945년 8월 태원에서 순국 문학준 : 1943년 8월 하남성 수무현에서 순국 백정현 : 1944년 4월 태원에서 순국 안일용 : 1943년 5월 하남성 수무현에서 순국 이한기 : 1943년 7월 전방공작요원으로 활동 이해순 : 1945년 8월 하북성 석가장에서 순국 전일묵 : 1945년 8월 산서성 태원에서 순국 정상섭 : 1943년 9월 태행산 전투에서 순국 현이평 : 1941년 3월 서안에서 순국 한 휘 : 1943년 7월 태행산 전투에서 순국 동방석 : 1971년 사망, 태행산지구 공작요원으로 활동 이도순 : 미상, 서산지구 공작요원으로 활동 조대균 : 미상, 특수공작훈련단으로 활동 <이장자> 김천성 : 1945년 7월 산서성 태원에서 순국, 1975.8.8.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 한성수 : 1945년 5월 광복군 모집 및 정보공작 중 순국, 1991.6.19.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
광주시 3.1독립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0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기도 광주시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우리 선조들은 일제 침략에 조국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싸웠고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된 조국이 있게 되었다. 광주인들의 독립만세운동정신을 기리고 특히 의병들의 치열했던 항쟁사 속의 구국정신과 그분들의 혼을 여기에 새기고 후세에 선열들의 얼을 계승하고자 3.1독립운동기념탑을 건립하게 되었다.
광명시 호국유공자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기도 광명시
관할지청 : 인천보훈지청
시설내용 : 광명시 하안동에 내에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유공자의 공적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호국유공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광명시는 정한식·한명인·김용산·신동호(6·25전쟁), 임홍수·권종만·감석목) 등 참전유공자의 숭고한 호국충정의 얼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며 나아가 안보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8년 2월 1일 이 비를 세웠다. 6·25전쟁에서 광명 청년들은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1950년 6월 25일 북한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빨치산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또한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공산주의에 맞서서 ‘제2의 한국전선’인 베트남에서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워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으며,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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