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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국채보상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04년 일제는 대한제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트려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게 하였다. 1907년 2월까지 1300만원의 국채가 쌓였고, 이 돈은 한국정부가 재정적으로 갚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구지방의 애국지사들이 1907년 1월 29일 국채보상문제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했다. 김광제, 서상돈등은 국채보상 취지문을 작성하여 전국에 반포하면서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였는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참여하여 의연금을 냈다. 이후 국채보상금 처리회의 회장 유길준은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의연금으로 장차 교육 사업을 하기로 결의하고 한강변의 농토를 사들이던 중 1910년 8월 29일 한, 일 합방의 국치를 맞았고, 모집한 의연금은 그 후 한국 국민들의 민립대학 설립운동의 재정적 기초가 되었다. 기념비는 1907년 2월 21일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을 세상에 공포하기 위한 대구군민대회가 열린 장소인 옛“북후정”정자 터에 이날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여 1997년에 건립되었다.
국민방위군 6.25 무주수복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 동족상잔으로 산하를 피로 붉게 물들였던 두매산골 무주는 참옥한 비극의 현장이었다. 당시 청년연맹 대동청년단장에 온몸을 던져 앞장선 초대 단장 전 제헌국회의원 신현돈 선생, 2대단장 전 제헌국회의원 김교중선생 그리고 3대단장에 대한청년단을 역임한 오문환선생은 납치되어 옥중에서 목숨을 잃었고 4대 대한청년단장 김동헌 선생은 남하하여 부대집결에 공이 많았으며 지역 치안과 향토방위와 공비토벌은 물론 용사들의 보급품을 지원하면서 선무활동에 힘써왔다. 6.25동란으로 무주군 모든 행정은 공백기에 들어가고 단원은 분산되었다. 잔류된 단원 10여 명은 공산군 치하에서 지하조직활동으로 고통스럽게 지내오다가 반공투쟁단을 조직하여 결사적인 활동을 하던 중 패주하는 공산군의 무기와 실탄을 빼앗고 1950년 9월 28일 무주경찰서를 탈환하여 태극기를 꽂고 지역치안활동을 시작하였다. 남하하던 국민방위군 30여 명은 제2신병교육대에서 모병업무와 신병교육에 힘써오다가 원대복귀하면서 기존의 반공투사들과 합류하여 계급군번없는 용사들을 이끌고 무주치안수복 공비토벌 작전에 공적을 남기고 무주경찰이 진격할 때까지 군청과 경찰서를 결사적으로 사수하였다. 피비린내 나는 지역 치안 수복방위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애국계몽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는 국채보상운동 당시 여성 참여의 기폭제가 됐던 대구 남일동 7부인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애국계몽단체인 대구 광문회(회장 김광제)에서 서상돈 선생이 건의함으로써 첫 횃불이 올랐다. 2월 21일 북후정에서 열린 '국채보상 대구군민대회'에는 수많은 시민이 다투어 참가했는데 국채보상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은 눈부셨다. 여학생은 물론 가정의 부인에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성 못지않게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남일동 7부인회는 비녀와 반지를 뽑고 깊이 숨겨두었던 보석을 국채보상금으로 헌납함으로써 그 후 수많은 여성들이 그 뒤를 따르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 이름 없는 걸인으로부터 고종 황제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구국운동으로 승화하였다. 이 비폭력 항일정신은 뒷날 3. 1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으로 이어져 우리의 소중한 정신유산이 되었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07년
주제 : 민족주의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시가 1907년 거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로서, 국채보상운동의 숭고한 구국정신과 뜻을 기념하고 계승ㆍ발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1년 10월 개관하였다. 지하 1층의 ‘제1전시실’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의 시작과 전개에 대하여, 지상 1층의 ‘제2전시실’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의 결과와 미래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다. 영상실에서는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영상을 상영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국비와 시비 그리고 시민들의 모금으로 지어져 2011년 10월 5일 ‘한국기부문화일번지’로 명명되었다. 주요 시설물은 지하 1층에 제1전시실, 영상실이 있고 지상 1층에 제2전시실, 시민과 함께하는 국채보상운동, 지상 2층에는 기획전시실,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다. 주요 전시물로는 대한매일신보(449호), 국채보상기성회취지서, (국채보상)영수증,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규정 등이 있다.
국군 제2연대 창설 공적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대전광역시 서구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대전시 서구 갈마동 올림픽기념국민생활공원 내에 국방경비대(현 육군) 제2연대가 창설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국군제2연대전우회에서 2010년 6월 4일 공적비를 세웠다. 1946년 2월 28일 국방경비대 제2연대가 창설되었다. 국방경비대는 해방된 조국의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지자 청년들이 계속 지원 입대하여 연대가 창설되었다.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실질적인 교육훈련으로 창군의 위업을 달성하여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하고 후에 국군의 모체가 된 유서깊은 곳이다. 이러한 애국충정의 유서깊은 곳에 국군제2연대 창설지탑을 1993년 건립하였다. 2010년 6월 4일 국군제2연대창설공적비를 건립하여 6·25전쟁에서 산화한 국군제2연대 전사자 4, 024위의 위패를 봉안하여 후세 국민은 물론이요, 청년 학생들의 안보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창설공적비는 호국영령에 대한 헌시와 전투약사를 기록해 당시의 상황을 역사적으로 보존하도록 했다.
국군 및 육군사관학교 창설지(육군사관학교 및 밴플리트 장군 동상)
시설 : 기타
사건 연도 : 년
주제 : 기타
지역 : 서울특별시 노원구
관할지청 : 서울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한국전 당시에는 미국 제 8 군 사령관으로 유엔군 사령관을 겸했다. 1951년 4 월 14일 밴 플리트는, 맥아더 원수가 미국으로 귀임하게 되면서 맥아더의 후임이 된 매슈 리지웨이 장군의 후임으로, 8 군과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한국전에 참가하게 된다. 그는 리지웨이의 전략을 이어 받아 수적으로 우세였던 중국 공산군과 북한군에 맞서는 작전에서 미 8 군을 지휘했다.
군산중.고등학교 6.25학도병 명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국가보훈처 주관 호국영웅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군산중.고등학교 출신 6.25참전 학도병을 추모하기 위하여 2020년 건립함
군포시 월남참전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0년
주제 : 월남전쟁
지역 : 경기도 군포시
관할지청 : 경기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군포시는 2012년 10월 군포시 금정동 산 356-8 한얼공원 내에 월남기념참전탑을 건립하여 젊은 나이에 자유수호를 위해 베트남에 파병되어 용감히 싸운 군포 출신 베트남 참전 용사 1, 057명의 공적을 기리고 그들의 위대한 기상과 숭고한 뜻을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하였다. 한얼공원에는 이 현충탑과 아울러 육탄 10용사 가운데 군포 출신인 이희복 용사 동상이 설치돼 있어 시민들을 위한 안보의식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군경 충혼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관할지청 : 경북남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울진군 척산리에 6·25전쟁 기간에 산화한 기성면 출신 전몰용사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비’를 건립하였다. 유족들은 호국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애향심을 후대에 널리 계승시키기 위해 1966년 1월 1일 충혼비를 세웠다. 6·25전쟁 기간 기성면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의 침략에 맞섰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3년간의 전쟁 동안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 38선 인근의 고지쟁탈전,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다.
군산 3·1독립운동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관할지청 : 전북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군산은 호남지방에서 처음으로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시위는 주로 구암교회 신자와 영명학교, 멜본딘 여학교, 구암 예수병원 등 학생 및 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처음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 김병수가 주도하였는데, 여기에 이두열, 고석주, 김수영 등의 영명학교 교사들과 양기준, 유한종 등의 예수병원 직원들이 합세하여 군산의 장날인 3월 6일에 거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3월 5일, 거사의 낌새를 눈치 챈 일본경찰 10여명이 영명학교와 멜본딘 여학교를 급습하여 박연세와 이두열이 잡혀가자 계획한 다음날을 기다리지 않고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예수병원직원과 영명학교 교사 20여명, 학생 100여명, 멜본딘 여학생과 주민들 140여명 가량이 영명학교 운동장에 모여 출발하여 군산경찰서 방면을 향해 다가가며 독립선언서를 곳곳에 뿌리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어느새 군산은 ‘독립만세운동’의 물길에 휩싸이게 된다. 그 후 점차 수가 늘어나자 일본 경찰은 군중들에게 무자비한 사격을 가하였다. 이때 만세운동 현장에서 검거되거나 체포된 사람은 약 90여명으로 모두 군산경찰서에 투옥되었고, 영명학교와 멜본딘 여학교는 헌병대와 일본경찰들이 수색하여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서를 압수하고 학교의 기물을 파손하였다. 심지어 두 학교의 교사들은 만세운동과 관련이 있든 없든 모두 연행되어 며칠씩 심문을 받는 고충을 당하기도 하였다. 군산에서 3월 5일에 일어난 3·5만세운동은 호남지방 최초로 일어난 봉기로 이후 전북 전 지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군산의 자긍심을 세우고, 선열들이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발전 및 후세까지 역사현장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군산 3.1운동기념사업회에서 군산 3.5만세운동의 발원지인 구암동산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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