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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옥파이종일선생생가
시설 : 생가
사건 연도 : 1858년
주제 : 3·1운동
지역 : 충청남도 태안군
관할지청 : 충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이종일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어났다. 신교육의 일환으로 1898년 흥화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여성들도 읽을 수 있는 순 한글 신문인 <뎨국신문>을 간행하였고 신물을 통해서 애국에 관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또한, 1910년까지 10여 년간 <뎨국신문>의 사장 겸 기자로서 <황성신문>, <만세보>, <대한민보> 등의 언론기관에도 참여하여 언론계에서 개화와 구국 계몽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에서는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3·1운동으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1920년 10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하자 제2의 3·1독립운동을 준비하였으나 사전에 탄로되어 성사되지 못하였다. 1925년 8월 31일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초가 거적위에서 68세를 일기로 영양실조로 서거하였다.
옥천사 - 고성 독립운동 근거지
시설 :
사건 연도 : 0년
주제 : 기타
지역 : 경상남도 고성군
관할지청 : 경남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성의 유서 깊은 사찰로, 일제시기에는 경남지역 애국지사들의 주요한 활동거점이기도 하였다. 특히 승려 신화수(申華秀)와 한봉진(韓奉眞)은 3·1운동 전후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애국지사 변상태(卞相泰)·이주현(李周賢) 등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면서 이들이 거사를 논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뿐만 아니라 본인들도 군자금 모집 등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21년 전국의 동지를 규합하여 제2차 독립만세운동을 도모하다가 체포된 옥천사 승려 신화수는 1919년 3ㆍ1운동 발발 후 4월부터 서울에서 김상옥(金相玉) 등과 함께 혁신단을 조직하고 기관지로 『혁신공보』를 발행·배포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1923년에는 의열단원으로 폭탄과 권총 등의 무기를 휴대한 채 상하이[上海]로부터 귀국한 김상옥에게 군자금 1, 000원을 제공해 준 혐의로 체포되기도 하였다. 한봉진은 1919년 무렵 대한독립단에 가입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으로 군자금 모집 사명을 띠고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던 윤영백(尹永伯)과 함께 국내에서의 연락책임을 임무를 맡고 옥천사를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였다. 절은 창건 이후에 수차례 중창하였으나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완전 소실되었다가 인조 17년(1639년)에 의오대사에 의해 재건되었다. 경내의 보장각에는 보물 제495호 '임자명 반자'와 지장모살탱, 시왕탱, 옥천사대종 등 지방 문화재 100여 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백연암, 청연암, 연대암의 부속암자가 있는 고찰로 경남 지방기념물 제140호이다.
옹진지구 전투 위령탑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강원도 인제군
관할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50.6.25.~6.27. 한국전쟁 개전 초기 적군은 옹진반도내 아군을 해상 철수전에 내력에서 포착 섬멸하기 위해 제14연대를 주공, 제3경비여단을 조공으로 공격하였으며 아군은 좌일선에 제1대대, 우일선에 제3대대, 제2대대를 예비로하여 해주방면에서 강령과 양원에 이르는 도로에 방어중점을 두고 방어하였다. 연대장(대령 백인엽)은 야간에 공차를 이용한 양동작전으로 성공적인 해상철수를 보장하였으며 차기작전에 참가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옹진전투에 참전한 부대와 군인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완도군 참전용사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기타
지역 : 전라남도 완도군
관할지청 : 광주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완도군은 2008년 6월 24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 가용리 50(체육공원 내)에 6·25 및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전몰장병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생존한 6·25 및 베트남 참전 용사의 호국충정 및 명예를 선양하기 위해 이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기념탑 좌·우측에 있는 명각비에 완도지역 6·25전쟁 참전유공자 2, 408명,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408명, 무공수훈자 109명 등 총 2, 925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완주군 참전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50년
주제 : 6·25전쟁 및 월남전쟁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완주군은 2006년 6월 27일 전북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 309-6 독립기념관 옆에 6·25참전기념탑과 베트남참전기념탑을 나란히 건립하였다. 6·25 한국전쟁 및 베트남전에 참가한 완주군 출신 참전유공자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두 전쟁의 역사적 의의와 교훈을 상기시키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완계정사
시설 : 조형물
사건 연도 : 1881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라남도 곡성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안훈은 곽종석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1919년 파리만국회의에 조선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137인 중 한 명으로 이명은 안자정이다. 그는 1901년 완계정사를 설립하고 해방 때까지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일제의 창씨개명 등에 반대하며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냈고, 1941년에는 의병장 이석용의 추모비를 세우려다 일경에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완계정사는 이같은 안훈의 지도 아래 곡성 민족교육의 산실이 되었다. 완계정사는 해방 이후 크게 훼손되어 2000년대에 다시 복원되었다.
완주독립운동추모공원
시설 : 장소
사건 연도 : 0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관할지청 : 전북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완주 출신 독립운동가 장병구를 비롯한 29명의 추모 공원. 완주 독립운동 추모공원은 완주독립기념관으로도 부른다. 완주독립운동 추모공원 안에는 애국지사 백산 장병구선생 구국비와 독립운동 추념탑, 독립운동가 28인의 명판, 독립선언문, 추모각 등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정부는 1992년 8월 15일 독립우동가 장병구를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하였다. 2012년 9월 1일, 완주26위애국선열선양사업회는 전북 완주군 출신의 독립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국민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이 공원을 조성하였다.
왕재일 선생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903년
주제 : 학생운동
지역 : 전라남도 구례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왕재일은 1904년 1월 19일 광의면 지천리에서 태어났다. 1927년 1월 말경 조선청년연맹 전남지부와 신간회 전남지부에 가입했으며 신간회 및 조선청년총연맹 강진군지부의 조직책을 맡아 항일운동에 나섰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전남공립사범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에 독서회를 비밀조직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생하자 검거자의 탈환과 조선인본위의 교육제도 확립 등 격문을 살포하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주동자로 왜경에 체포됐다. 1932년 2월 장흥군을 근거지로 전남농민협의회를 비밀리에 조직, 각종 야학회와 소작인의 투쟁 등을 연결시켜 항일운동을 계속하던 중 1935년 12월 전남농민협의회 사건이 발각돼 대구복심법원에서 전남농민협의회 사건의 배후조정 인물로 지목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63년 3월 1일 독립유공자 표창장을 추서 받았으며 지난 91년 8월 15일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왕재일선생 동상은 군비 5천만원을 들여 지난달 착공, 높이 4.0m, 폭 1.5m 규모로 건립됐다.
왕산 허위선생 순국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854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허위는 1854년 경북 구미에서 출생하여 영희정 참봉, 평리원 재판장을 거쳐, 의정부 참판, 비서원승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통분하여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에서 이인영, 신돌석, 이강년, 문태서, 민긍호 의병장과 함께 전국연합 의병부대인 “13도 창의군”을 조직하였고, 군사장 겸 진동창의대장(경기·황해도)으로 선발대 300여명을 이끌고 일제 통감부를 공격하려는 서울진공작전을 펼쳤으나, 후속부대와의 연결 미비와 무기의 열세 등으로 결국 실패하였다. 선생은 1908년 5월 일본 헌병대의 습격을 받아 체포되었으며, 그해 10월 21일(음력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51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왕산 허위선생 순국기념비는 1962년 10월 건립된 비로 대구 달성공원내에 위치하고 있다.
왕산 허위선생 기념관
시설 : 기념관
사건 연도 : 1908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허위는 1854년 경북 구미에서 출생하여 영희정 참봉, 평리원 재판장을 거쳐, 의정부 참판, 비서원승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통분하여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에서 이인영, 신돌석, 이강년, 문태서, 민긍호 의병장과 함께 전국연합 의병부대인 “13도 창의군”을 조직하였고, 군사장 겸 진동창의대장(경기·황해도)으로 선발대 300여명을 이끌고 일제 통감부를 공격하려는 서울진공작전을 펼쳤으나, 후속부대와의 연결 미비와 무기의 열세 등으로 결국 실패하였다. 선생은 1908년 5월 일본 헌병대의 습격을 받아 체포되었으며, 그해 10월 21일(음력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51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으며, 선생의 출생지인 구미에 『왕산 허위선생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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