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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수 : 2316
용인 3·1만세운동 기념탑
시설 : 탑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관할지청 : 경기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1919년 3월 21일 약 1천명이 참가하여 일어나 원삼면의 3·1만세운동의 독립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용인시가 2011년 4월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 산21-1에 건립한 철조 기념탑이다. 1919년 3월 21일 용인군 원삼면에서 이봉현·김영달·김성남·이은표·이용환·최상근·안명옥·김은수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고 산봉우리마다 봉화를 올리는 등 준비를 갖춘 후 이날 새벽 횃불을 들고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원삼면사무소를 향해 시위 행진하였다. 이어 면장을 앞세우고 다시 장터로 향해 시위행진을 벌이던 중 출옥한 일군 헌병과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많은 사상자를 냈고 주동인물 다수가 체포되었다. 이같이 원삼면에서 시작된 용인 3·1만세 운동은 4월 2일 남사면 면장 기습시위 사건까지 13회에 걸쳐 13, 200명이 궐기해 사망자 35명, 부상자 139명, 피검 502명, 수형자 65명 등 사상자를 내며 외세에 대항한 운동으로 불굴의 의지와 독립정신의 표상이 되고 있다.
우리고장 국가유공자 기념비(남이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2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남이면 출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한 국가유공자의 애국애족의 충정과 숭고한 뜻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면민의 뜻을 모아 1992년 9월 28일 충남 금산군 남이면 하금리 297-6(남이면사무소 내) 에 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 사업은 1991년도 보훈가족 사기앙양 추진시책과 관련하여 1992년 금산군 자체 특수시책인 ‘충절의 얼 기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다.
우리고장 유공자 기념비(부리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2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부리면 출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한 국가유공자의 애국애족의 충정과 숭고한 뜻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면민의 뜻을 모아 1992년 6월 1일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양곡리 131-4에 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 사업은 1991년도 보훈가족 사기앙양 추진시책과 관련하여 1992년 금산군 자체 특수시책인 ‘충절의 얼 기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다.
우봉 안지호의사 유허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19년
주제 : 3·1운동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관할지청 : 경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안지호는 1857년 9월 21일 고성군 고성읍 풍화리에서 태어났다. 1913년 여름 경상남도지사에게 도정이 부패하여 민생이 도탄에 빠져있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발송했고 1915년 9월에는 우리의 원수 일본이 강제로 조약을 체결하고 약속을 어겼다는 탄원서를 마산경찰서장과 일본정부에 발송하여 구류 15일을 살았다. 1917년 12월 일본은 도적의 마음으로 백성을 포악하게 다스린다는 규탄의 글을 써서 함안경찰주재소의 유리창을 파괴하고 투입하여 감옥에 갇혔으며 풀려난 후 다시 조선총독부에 필리핀, 폴란드가 독립했으므로 조선도 독립되어야 한다는 독립청원서를 제출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함안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는 등 함안읍 의거를 주도했다. 군중과 함께 군청과 주재소를 파괴하고 우편국, 소학교 및 보통학교, 등기소를 돌며 기물을 파손했으며 군수의 관복을 찢고 경찰서장과 일본관리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했다. 2∼3인이 체포되자 그들은 죄가 없으니 나를 체포하라며 자진해서 체포됐다. 부산지청 마산지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았으며 대구복심병원에서 징역 7년의 가중형을 받았다. 1921년 12월 23일 마산형무소에서 향년 65세로 순절했다. 우봉 안지호의사 유허비는 2010년 가야읍 신음리 861-2번지 일원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藕峯安智鎬義士遺墟碑」로 새겨졌으며 유허비 옆에 따로 높이와 폭이 1.5m인 취지문비를 세워 유허비를 세운 뜻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우리고장 국가유공자 기념비(남일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2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남일면 출신으로 애국지사,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한 국가유공자, 무공수훈자의 애국애족의 충정과 숭고한 뜻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면민의 뜻을 모아 1992년 7월 4일 충남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 308-2(남일면사무소 내)에 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 사업은 1991년도 보훈가족 사기앙양 추진시책과 관련하여 1992년 금산군 자체 특수시책인 ‘충절의 얼 기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다.
우리고장 국가유공자 기념비(금성면)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3년
주제 : 기타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금성면 출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한 국가유공자의 애국애족의 충정과 숭고한 뜻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면민의 뜻을 모아 1993년 6월 5일 충남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 157-5(금성면사무소)에 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 사업은 1991년도 보훈가족 사기앙양 추진시책과 관련하여 1992년 금산군 자체 특수시책인 ‘충절의 얼 기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다.
우리학교 출신 국가유공자 기념비
시설 : 비석
사건 연도 : 1992년
주제 : 6·25전쟁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관할지청 : 대전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1991년 보훈가족 사기양양 추진 시책과 관련하여 1992년 금산군 자체 특수시책인 "충절의 얼 기리기 운동"의 하나로 남이초등학교 출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분들을 기리고자 1992년 9월 28일 건립한 기념비이다.
우재 이병찬 지사 동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86년
주제 : 한말구국운동
지역 : 전라남도 보성군
관할지청 : 전남동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보성 출신 독립운동가 이병찬(본명 이병호) 동상. 이병찬은 1915년 7월 15일 경북 대구 소재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일제고관 및 친일배의 처단과 일제기관을 파괴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도모하였다. 대한광복회에서 박상진이 총사령장으로 추대되었을 때, 전라도 지부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병찬은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공갈·총포류단속취체령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1년 10월 12일, 이병찬지사추모사업회에서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추모하고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동상을 세웠다.
우강 송종익선생 상
시설 : 동상
사건 연도 : 1887년
주제 : 해외운동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관할지청 : 대구지방보훈청
시설내용 : 송종익은 1887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1906년 미국으로 건너가 공립협회에 가입하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08년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일제 통감부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를 처단하자 이들 두 의사의 재판후원 재무로 선임되어 활약한 이래, 1945년 광복 때까지 미주 지역에서 한인사회의 안녕과 권익 보호를 위해 활약하였고, 흥사단, 대한인국민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주로 재정을 담당하면서 살림을 도맡았다. 또한 대한인국민회 재무를 맡아 임시정부 청사구입과 임시정부 경비자금을 조달하였으며, 미주 지역 동포들의 애국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역할을 하였다. 동상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송종익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에 널리 교훈으로 삼고자 1999년에 건립되었다.
우초 민순호 의사 사당
시설 : 사당
사건 연도 : 년
주제 : 의병운동
지역 : 경상북도 문경시
관할지청 : 경북북부보훈지청
시설내용 : 경상북도 문경(聞慶) 출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 봉래(鳳來), 호는 우초(愚樵)이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전국에 의병운동이 일어나자 1896년 1월 의병장 운강 이강년(雲崗 李康秊)을 도와 문경에서 거의하였으며 자신의 전 재산을 군자금으로 희사하였다. 의병을 피해 도망가던 친일 관리 안동관찰사(安東觀察使)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치윤(李治允), 김인담(金仁覃)을 붙잡아 군중들 앞에서 그들의 친일행각을 밝히고 효수(梟首)하였다. 그 후 마성면 마고성(麻城面 麻姑城)에서 적과 격전을 치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한 후 이강년과 함께 제천(堤川) 의진과 연합하여 의암 유인석(毅庵 柳麟錫)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돌격장에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고종(高宗)이 강제 퇴위 당하자 이강년과 함께 다시 거의하였다. 충주(忠州), 연풍(延豊), 영주(榮州), 봉화(奉花), 안동(安東), 강릉(江陵), 원주(原州)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으며 1907년 7월 제천 전투에서 크게 이겨 이강년 의진의 명성이 높아졌다. 1908년 의병장 이강년이 체포되어 순국한 후에도 중군장(中軍將) 김상태(金尙台)를 중심으로 재기하여 태백산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후에 《운강선생창의일록 雲岡先生倡義日錄》 편찬사업에도 관여하여 의병의 활동기록을 남기는데 동참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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